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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 Jan 24. 2024

사물에 담긴 추억의 생김새

외할아버지의 새우깡

사물에는 추억이 담긴다.

어떤 것은 좋은 기억으로, 어떤 것은 아픈 기억으로.

좋았던 시절 자주 듣던 음악을 듣게 되면 당시의 추억이 고스란히 떠오르곤 한다. 때로는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때로는 신나는 추억여행이 생각나 어깨가 들썩거린다. 길에서 스친 타인의 향수 냄새에 옛 남자친구를 떠올릴 때도 있다.


 


남편과 함께 영화를 보며 먹을 과자를 몇 개 사러 갔다. 그중 새우 한 마리가 큼지막하게 그려진 새우깡을 보니 문득 외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외할아버지는 내게 무서운 분이셨다. 늘 화가 가득해서 말보다는 소리를 지르곤 하셨는데, 부모님이 일하느라 외갓집에 맡겨진 나는 할아버지가 무서워 도망 다니기 바빴다.


할아버지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던 어느 날 나는 누워계시던 할아버지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평소처럼 ‘빨빨거리며 뛰어다니지 마’라고 소리를 지르며 꾸중하실까 긴장하던 그때, 할아버지는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셨고, 새우깡 한 봉지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다. 내게 화를 내시지 않아 안심하고 내심 과자도 얻어먹을 생각에 기분 좋게 심부름을 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과자 몇 개만을 쥐여주시고는 무심하게 혼자 다 드셨다. 더 나눠주지 않는 할아버지가 어린 마음에 참 미웠다. 할머니는 소화도 안된다고 하면서 과자를 먹냐고 할아버지께 잔소리를 하셨지만, 나의 새우깡 심부름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할아버지는 88 올림픽을 6개월 앞두고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입버릇처럼 ‘올림픽 보고 죽는 게 소원이야’라고 하셨는데, 끝내 보지 못하셨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할아버지의 새우깡 사연을 듣게 되었다. 위암으로 소화가 안 되던 할아버지는 새우가 소화에 좋다고 들으셨던 모양이다. 소화제도 소용이 없자, 새우깡에 그려진 큼지막한 새우 그림과 봉지에 쓰여있는 '새우 몇 % 첨가'라는 것을 보고 의지하고픈 마음에 드신 거라 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답답하면서도 안쓰러워 마음이 아팠다.






그 이후로 새우깡을 볼 때마다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무서웠던 할아버지가 새우깡을 오물오물 드시던 모습, 작은 손에 꽉 채워지지 않았던 과자 양이 이내 섭섭했던 내 어린 마음, 새우깡에 의지해서라도 살고 싶으셨던 할아버지의 간절한 마음들이 복합적으로 떠오른다.


 

사물에 담긴 다른 모양의 사연과 추억들. 다소 아픈 모양이라 해도 추억이 있다는 건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 같다. 잠깐이지만 할아버지의 삶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떠올라 오늘 하루를 허투루 보내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물로 기억되고 있을까? 지우고 싶은 추억이 아니라 마음에 남는 따뜻함으로 기억되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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