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았던 시절 자주 듣던 음악을 듣게 되면 당시의 추억이 고스란히 떠오르곤 한다. 때로는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때로는 신나는 추억여행이 생각나 어깨가 들썩거린다. 길에서 스친 타인의 향수 냄새에 옛 남자친구를 떠올릴 때도 있다.
남편과 함께 영화를 보며 먹을 과자를 몇 개 사러 갔다. 그중 새우 한 마리가 큼지막하게 그려진 새우깡을 보니 문득 외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외할아버지는 내게 무서운 분이셨다. 늘 화가 가득해서 말보다는 소리를 지르곤 하셨는데, 부모님이 일하느라 외갓집에 맡겨진 나는 할아버지가 무서워 도망 다니기 바빴다.
할아버지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던 어느 날 나는 누워계시던 할아버지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평소처럼 ‘빨빨거리며 뛰어다니지 마’라고 소리를 지르며 꾸중하실까 긴장하던 그때, 할아버지는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셨고, 새우깡 한 봉지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다. 내게 화를 내시지 않아 안심하고 내심 과자도 얻어먹을 생각에 기분 좋게 심부름을 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과자 몇 개만을 쥐여주시고는 무심하게 혼자 다 드셨다. 더 나눠주지 않는 할아버지가 어린 마음에 참 미웠다. 할머니는 소화도 안된다고 하면서 과자를 먹냐고 할아버지께 잔소리를 하셨지만, 나의 새우깡 심부름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할아버지는 88 올림픽을 6개월 앞두고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입버릇처럼 ‘올림픽 보고 죽는 게 소원이야’라고 하셨는데, 끝내 보지 못하셨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할아버지의 새우깡 사연을 듣게 되었다. 위암으로 소화가 안 되던 할아버지는 새우가 소화에 좋다고 들으셨던 모양이다. 소화제도 소용이 없자, 새우깡에 그려진 큼지막한 새우 그림과 봉지에 쓰여있는 '새우 몇 % 첨가'라는 것을 보고 의지하고픈 마음에 드신 거라 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답답하면서도 안쓰러워 마음이 아팠다.
그 이후로 새우깡을 볼 때마다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무서웠던 할아버지가 새우깡을 오물오물 드시던 모습, 작은 손에 꽉 채워지지 않았던 과자 양이 이내 섭섭했던 내 어린 마음, 새우깡에 의지해서라도 살고 싶으셨던 할아버지의 간절한 마음들이 복합적으로 떠오른다.
사물에 담긴 다른 모양의 사연과 추억들. 다소 아픈 모양이라 해도 추억이 있다는 건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 같다. 잠깐이지만 할아버지의 삶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떠올라 오늘 하루를 허투루 보내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물로 기억되고 있을까? 지우고 싶은 추억이 아니라 마음에 남는 따뜻함으로 기억되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