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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뜰살뜰 구구샘 Jul 29. 2024

교실의 네모난 벽을 허물다

유현준, <유현준의 인문건축기행>

'네모난 학교, 네모난 칠판, 네모난 책상'


네모는 죄가 없다. 그런데 욕을 무지 먹는다. 각진 공간이 아이들의 창의성을 말살한다나? 그 공간에 내가 산다. 우리 반 학생들과 함께.


몇 년 전이었다. 교실을 비우라는 지시를 받았다. 방학 때 우리 반을 리모델링한다고 했다. 벽을 쪼개고 넓히고 뒤튼다고 했다. 네모난 책상을 네모난 복도로 뺐다. 그러니 네모난 교실만 덩그러니 남았다.


'교실 벽 허물면 건물 안 무너지나?'


며칠 뒤 기술자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마법을 보여줬다. 먼저 칠판을 뜯어냈다. 그리고 작업자들은 벽을 부숴버렸다(!) 뒤통수가 발가벗겨진 칠판이 멋쩍게 웃을 새도 없었다. 세상에, 이 벽 없앨 수 있던 거예요? 그제야 나는 우리 학교 공간들을 다시 생각했다.


0.5칸: 준비물실

1.0칸: 우리 반 교실

1.5칸: 회의실

2.0칸: 예술 연습실


쓰임새에 따라 크기가 달랐다. 나는 그걸 학교 지을 때부터 정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 반을 뿌셔뿌셔하는 걸 보고 깨달았다. 학교 교실은 언제든지 줄이고 넓힐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학교는 기둥식 구조라 자유롭게 리모델링할 수 있습니다"


몇 년 뒤 비밀을 알게 됐다. 이 책 <유현준의 인문건축기행> 덕분이었다. 학교는 기둥식 구조라서 리모델링이 편하단다. 하지만 아파트는 벽식 구조라서 구조 변경이 힘들다나? 학교는 생각보다 창의적인 공간이었던 거다!


-기둥식 구조: 건물 무게를 기둥이 견딤. 그래서 벽 부숴도 됨.(예: 경복궁 경회루)

-벽식 구조: 건물 무게를 벽이 견딤. 벽 부수면 건물 무너짐.(예: 대부분의 아파트)


그런데 학교는 왜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왜 '창의성 말살'이라는 오해를 받을까? 그 이유도 책에 나와 있었다. 그건 바로


"천장 높이에 따라 창의성이 달라집니다."


천장 높이가 2.7m인 공간과 3.0m인 공간에 사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있단다. 30cm 차이 창의성 지수가 다르다나? 그런데 어쩌지. 교실 천장을 높이긴 어렵다. 윗반 교실 바닥을 뚫을 순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학교에도 희망은 있다. 천장고가 어마무시한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바로 '체육관'이다.


어쩐지 체육관 간다고 하면 학생들이 그렇게 좋아하더라. 아이들 표정부터 달라진다. 좋아서 방방 뛰는 친구도 있다. 체육이라는 과목 자체가 좋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공간이 주는 개방감도 한몫 했으리라.


이 책의 저자는 건축과 교수다. 그런데 인문학까지 마스터했다. 그가 세계에 있는 멋진 건축물 30개를 뽑았다. 그리고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요리했다. 건축을 쥐뿔도 모르는 나도 술술 읽을 수 있었다. 128만 유튜버의 내공은 엄청났다.


나는 초등교사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네모난 교실'에서 보낸다. 그런데도 나는 교실이라는 공간을 몰랐다. 하지만 책을 읽은 뒤로는 녀석을 다르게 볼 수 있었다.


내일은 체육관 수업이 있는 날이다. 높은 천장을 만끽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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