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의 네모난 벽을 허물다
유현준, <유현준의 인문건축기행>
'네모난 학교, 네모난 칠판, 네모난 책상'
네모는 죄가 없다. 그런데 욕을 무지 먹는다. 각진 공간이 아이들의 창의성을 말살한다나? 그 공간에 내가 산다. 우리 반 학생들과 함께.
몇 년 전이었다. 교실을 비우라는 지시를 받았다. 방학 때 우리 반을 리모델링한다고 했다. 벽을 쪼개고 넓히고 뒤튼다고 했다. 네모난 책상을 네모난 복도로 뺐다. 그러니 네모난 교실만 덩그러니 남았다.
'교실 벽 허물면 건물 안 무너지나?'
며칠 뒤 기술자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마법을 보여줬다. 먼저 칠판을 뜯어냈다. 그리고 작업자들은 벽을 부숴버렸다(!) 뒤통수가 발가벗겨진 칠판이 멋쩍게 웃을 새도 없었다. 세상에, 이 벽 없앨 수 있던 거예요? 그제야 나는 우리 학교 공간들을 다시 생각했다.
0.5칸: 준비물실
1.0칸: 우리 반 교실
1.5칸: 회의실
2.0칸: 예술 연습실
쓰임새에 따라 크기가 달랐다. 나는 그걸 학교 지을 때부터 정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 반을 뿌셔뿌셔하는 걸 보고 깨달았다. 학교 교실은 언제든지 줄이고 넓힐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학교는 기둥식 구조라 자유롭게 리모델링할 수 있습니다"
몇 년 뒤 비밀을 알게 됐다. 이 책 <유현준의 인문건축기행> 덕분이었다. 학교는 기둥식 구조라서 리모델링이 편하단다. 하지만 아파트는 벽식 구조라서 구조 변경이 힘들다나? 학교는 생각보다 창의적인 공간이었던 거다!
-기둥식 구조: 건물 무게를 기둥이 견딤. 그래서 벽 부숴도 됨.(예: 경복궁 경회루)
-벽식 구조: 건물 무게를 벽이 견딤. 벽 부수면 건물 무너짐.(예: 대부분의 아파트)
그런데 학교는 왜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왜 '창의성 말살'이라는 오해를 받을까? 그 이유도 책에 나와 있었다. 그건 바로
"천장 높이에 따라 창의성이 달라집니다."
천장 높이가 2.7m인 공간과 3.0m인 공간에 사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있단다. 30cm 차이로 창의성 지수가 다르다나? 그런데 어쩌지. 교실 천장을 높이긴 어렵다. 윗반 교실 바닥을 뚫을 순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학교에도 희망은 있다. 천장고가 어마무시한 공간이 딱 한 곳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바로 '체육관'이다.
어쩐지 체육관 간다고 하면 학생들이 그렇게 좋아하더라. 아이들 표정부터 달라진다. 좋아서 방방 뛰는 친구도 있다. 체육이라는 과목 자체가 좋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공간이 주는 개방감도 한몫 했으리라.
이 책의 저자는 건축과 교수다. 그런데 인문학까지 마스터했다. 그가 세계에 있는 멋진 건축물 30개를 뽑았다. 그리고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요리했다. 건축을 쥐뿔도 모르는 나도 술술 읽을 수 있었다. 128만 유튜버의 내공은 엄청났다.
나는 초등교사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네모난 교실'에서 보낸다. 그런데도 나는 교실이라는 공간을 몰랐다. 하지만 책을 읽은 뒤로는 녀석을 다르게 볼 수 있었다.
내일은 체육관 수업이 있는 날이다. 높은 천장을 만끽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