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 <코스모스>
책과 담쌓은 사람도 이건 들어봤을 것이다.
1. 총, 균, 쇠
2. 사피엔스
3. 코스모스
셋 다 책 두께가 장난이 아니다. 기관총은 몰라도 권총에서 날아온 총알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1~2번은 양반이다. '지구 안 이야기'를 다루니까. 그럼 3번은 뭐냐고? <코스모스>니까 식물도감 아니냐고?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코스모스(cosmos): 국화과의 한해살이 풀
코스모스(cosmos): 질서와 조화를 지니고 있는 우주 또는 세계(그리스어)
눈치챘겠지만 이 책은 우주를 다룬다. 책 표지만 봐도 후덜덜하다. 검은 바탕에 흰 점들이 빼곡히 찍혀 있다. 언뜻 보기엔 고장 난 인쇄소 기계로 인한 오류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거 죄다 우주다.
yes24에서 책이 배송되기 전, 흉흉한 소문부터 내 귀에 배달됐다. '천문학 박사님도 읽다가 빤스런 했다', '천문학 책이 아니라 삼라만상을 다룬 책', '5초 안에 잠들게 해주는 불면증 치료제'... 그러다 '띵동' 책이 내 손 안으로 들어왔다. 냉큼 첫 장을 넘겼다.
...
눈을 떴다. 벌써 책의 마지막 장이었다. 잠시 우주여행, 아니 시간여행을 한 것 같았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들이 다른 행성에 갔다 우주선으로 돌아왔을 때, 우주선에 남아 있던 동료는 폭삭 늙어 있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이 책이 딱 그랬다. 시간의 상대성 이론인가 뭔가를 체험하게 해 준다.
소문처럼 이 책은 천문학 책이 아니었다. 삼라만상, 그러니까 오만 걸 다룬다. 인류의 진화부터 시작해서, 원자보다 작은 쿼크인가 뭔가로 들어갔다가, 갑자기 나를 백악기 공룡 옆에 데려다 놓는다. 그러더니 핵전쟁의 위험성을 언급하고, 보이저 우주선과 함께 나를 안드로메다 너머로 보내버린다.
맞다. 나쁘게 말하면 이 책은 잡탕이다. 그런데 이걸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이유는 딱 하나다. 저자인 칼 세이건의 필력이 미쳐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글쟁이로 손꼽히는 유시민 작가가 글쓰기 책으로 세 권을 추천했단다. 그중에 하나가 <코스모스>란다. 세상에,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제치고 천문학 책을 꼽았다니! 읽어 보면 "글빨 쥑이네" 소리가 절로 나올 것이다.
저자인 칼 세이건은 1934년생이다. 이 책은 1980년에 냈단다. 지금도 살아계신가 궁금해 찾아보니 1996년에 돌아가셨단다. 그땐 나무위키도 없었을 땐데, 이 방대한 지식을 어떻게 정리한 걸까? 진짜 '상대성 이론'으로 어디 다른 행성에서 시간을 벌어온 걸까? 저승에 메일을 보내 물어보고 싶다.
표지에 띠지가 붙어 있었다. 거기 유시민 작가의 추천사 비슷한 게 있었다. '무인도에 책 한 권만 들고 갈 수 있다면 <코스모스> 챙기겠다'는 내용이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다.
이 책은 육신과 정신을 분리시킨다. 칼 세이건의 글빨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우주를 날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보이저 탐사선이 나를 향해 방긋 웃어준다. 그리고 멀리서 반짝이는 한 점을 볼 수 있을 거다.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표현한 우리 지구 말이다.
총각 시절, 정신이 힘들 땐 동네 뒷산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면 동네 야경이 쫙 보였다. 사람은 개미만큼 작게 보였고, 건물은 레고보다 조금 크게 보였다. 그걸 보면 속이 뻥 뚫렸다. 속세와 멀어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해발 200미터짜리 동네 뒷산도 영험한 효능이 있는데 우주는 어떻겠는가? 혹시 속세에서 고통받고 있는가?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괴로운가? 그럼 이 책을 읽어보시라. 칼 세이건 아저씨가 손 잡고 우주로 데려다줄 것이다.
그럼 다들 우주에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