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진료실 안
'상징맨'이라 함은 내 주치의를 가리킨다. 곤과 대화하다가 “그에겐 모든 것이 상징이야”라길래 무척 적절해서 차용해보았다.
주치의는 내 모든 이야기를 어머니, 아버지, 자식의 비유 틀 안에서 파악하려 한다. 이런 환원론적 분석이 다소 불편하기도 했다. 그래도 오늘은 나름대로 그럴듯하다고 느꼈다.
1. 엄마의 아버지
엄마와 동생이 저마다의 이유로 힘들어한다는 얘기를 했다. 주치의는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군요.”라고 말했다. 가족 전체는 아니지만 엄마와 동생은 내게 그런 대상이라고 답했다.
어머니의 경우는 힘들 만한 이유가 있는데, 외할아버지께서 위독하시기 때문이다. 나는 외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별로 없어서, 외할아버지라는 개별적 인간에 대한 슬픔보다는 병들고 죽어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생각을 했다고 했다. 한편 ‘엄마는 자기 아빠가 애틋하구나, 나한텐 그런 아빠를 주지 않았으면서,’ 하는 마음도 든다고 했다.
그리고 이것은 비이성적인 불안함인데, 엄마에게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엄마가 혹시 죽을까봐 걱정된다고 했다. 엄마를 사랑해서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엄마가 없는 우리 가족을 상상하기가 끔찍하기 때문이다.
엄마를 사랑하고, 엄마가 힘든 게 안타깝지만 내게는 없는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을 질투하는구나, 나는. 그러면서도 내가 그녀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날 떠날까봐 두렵다.
2. 저주 인형
에세이 <저주 인형>의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상징맨은 곧장, “아버지가 찌를 만큼 강력한 대상이길 바라면서도, 아버지의 초라함을 발견하는군요.” 라고 말했다. 하찮은 저주 인형에 대한 내 연민도 아버지에 대한 것으로 그는 파악한 것 같다. 그는 저주 인형이 만약에 굉장히 강력하고 위협적인 느낌이었다면, 찌를 수 있지 않았겠냐고 했다. 그렇겠죠, 근데 그거 진짜 하찮게 생겼거든요.
"아버지가 완벽할 수 없는, 보통의 인간이라는 걸 이해해가고 있군요."
3. 에세이와 논문/ 공부와 연구
나는 요새는 논문은 집어 치웠고, 에세이를 좀 더 취미 이상으로 쓰고 싶다고 얘기했다. 논문에 대해서는 석사 수료보다는 석사가 낫고,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석사 논문을 써서 나도 쓰고 싶었는데, 이젠 쓰고 싶은 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공부는 좋아하는데 연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식민지 시기 소설, 이런 거 관심 없다. 내 (쓰지 못한) 논문은 1960년대 영화를 다뤘지만, 1960년대 영화? 뭐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막상 보면 흥미롭지만.
상징맨은 재밌는 해석을 했는데, 식민지 시기는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고, 1960년대는 아버지 어머니 세대가 아니냐며, 그들의 문제보다는 에세이를 통해 자신의 어려움에 집중하고 싶다는 뜻으로 들린다고 했다. 논문보다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건 나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고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실마리를 찾고… 그러고 싶다는 것 같다고. 그리고 또 상징맨은 비약했는데, ‘공부’는 다른 사람이 해 놓은 것을 배우는 것, ‘연구’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라, 마치 자식의 역할과 부모의 역할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모의 역할을 하는 것은 나에게 어머니를 상실한 상황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고 했다.
정말 비약적인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그 막막함…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윗 세대보다 나에게 집중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너무 맞아서 별로 할 말이 없고.
20분 동안 한 이야기 저변에 흐르는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반쯤은 비약, 반쯤은 새로운 통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