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소매치기를 당한 날
리스본에서 시작하기로 하고, 까미노 시작하는 전날 맛난 걸 먹겠다고 구글맵을 열심히 찾아보고 나름 별점이 괜찮은 곳을 찾아갔다. 내가 묵는 호스텔과 멀지 않았다.
시작하는 날 즈음에 리스본은 엄청나게 더웠다. 낮의 온도가 35도를 웃돌았는데 사실, 가만히만 있어도 힘이 빠지는 날씨였다. 그런데 언제 또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쓸데없이 욕심을 내어 돌아다녔다. 사실 리스본은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 심지어 올해 1월에 처음 와보고 생각지도 못하게 1년이 뭐야, 6개월 만에 돌아온 곳이었다. 1월에도 그 유명한 트램도 한번 타지 않고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또 무슨 구경을 하겠다고 그렇게나 돌아다녔는지. 심지어 한 달 동안 걸을 까미노 일정을 앞두고 말이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결국 기진맥진하여, 겨우 호스텔 앞에서 맥주 한 캔만 사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슈퍼에 갔다가 호스텔까지 돌아오는 50미터도 되지 않는 길에서 나는 생애 첫 소매치기를 당하고야 말았다. 18년째 해외생활과, 그 사이 수도 없이 다녔던 해외여행에서 왜, 하필, 지금!이었을까. 맥주가 식지도 않을 거리에 호스텔 앞에서 출입비밀번호를 찾으려고 배낭을 앞으로 가져온 순간 지퍼가 열려있는 걸 봤고 보자마자 내 머릿속은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털렸구나'
나는 리스본으로 오기 전 귀국을 위해 오스트리아 중고플랫폼인 Willhaben에 이것저것을 팔아서 거의 600유로 정도를 현금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00유로짜리는 배낭의 비밀주머니에 넣어두어서 털릴 수가 없는 곳에 들어있었고 20유로, 50유로짜리만 지갑도 아닌 헝겊주머니에 넣어 놨었는데 그것만 쏙 빼간 걸로 봐선, 왠지 슈퍼 주인이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가 가서 따진다고 돌려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주머니엔 100유로가 넘는 금액이 들어있었고, 난 앞으로 한 달간 돈을 써야 할 입장이었기에 짜증이 말도 못 하게 났지만 그냥 잊기로 한다.
난 내일부터 까미노길을 열심히 걸을 것이고, 내 돈을 훔쳐간 사람은 그 돈을 절대로 생산적인 데에 쓰지 않을 거야. 당신은 그 돈을 분명히 담배를 피우든, 마리화나를 피우든, 술을 쳐 마시든, 낭비만 하겠지. 그래, 그렇게 써버려. 그 돈은 반드시 다른 형태로 나에게 돌아올 것이니까.
내 나름대로의 저주를 퍼부었다.
다음날 아침 5시에 일어나 나는 부지런히 길을 떠났다. 100유로가 넘게 털린 것은 분하고 쉽게 잊힐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안 좋은 일을 뒤로하고 떠난다는 사실과 상쾌한 아침공기가 나를 설레게 했다. 앞으로의 걱정은 다만, 내가 이 일정을 주어진 시간 내에 마칠 수 있을 것인가? 그 하나였다. 어떻게든 마쳐야 한다.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