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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린 Feb 16. 2024

다시 한번, 겨울과 사랑에 빠지기 (1)

유럽에서 겨울나기

난 최근 약 7년간 겨울을 두려워하고 혐오했다.


지난 겨울은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 맞는 겨울이었다. 기대 반, 두려움 반. 유럽 겨울처럼 날씨가 우울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와 내가 살던 잘츠부르크에 비해 훨씬 추운 온도에 대한 두려움. 그 기대와 두려움이 정확히 맞아떨어지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코끝이 시려워서 저절로 찡그려지는 추위임에도 쨍한 파란 하늘에 너무 행복해서 눈에 눈물이 맺히기도 했고 엄청나게 추웠지만 잘츠부르크 집이 워낙 추워서 거기에 단련이 되다보니 내 몸은 스스로 열을 내는 법을 익혀서 그렇게까지 춥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1월엔 우연한 기회로 강원2024 청소년 동계올림픽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짧은 기간이지만 바이애슬론과 크로스컨트리 스키 두 종목에서 위원장님들 통역이라는 번드르르 해보이는 역할을 맡았다. 올림픽 일 자체에 대한 글을 다음 기회에 또 쓰기로 하고 오늘은 내가 겨울에 다시 사랑에 빠진 이야기를 하고 싶다.



스키라는 스포츠 종목은 유럽에서 와서 유럽이 강대국이다. 우리에게 스키는 겨울에, 이벤트성처럼 어쩌다 한번 하는 스포츠같은 느낌이지만 유럽에서는 여름스포츠보다 더 길게 즐길 수 있는 것이 겨울스포츠다. 그 중 알파인 스키 = 높은 곳에서 활강하며 내려오는 종목은 오스트리아에서 생긴 스포츠로 온 국민이 자랑스러워하며 즐기는 스포츠 중에 하나다.

처음 스키를 배운 곳 Maria Alm


나는 오스트리아 가기전에 스키를 탈 줄 몰랐다. 그러다 오스트리아에 살게 되면서 우울한 겨울을 경험하고 나서는 겨울 스포츠를 할 줄 알아야 괴로운 겨울을 조금은 즐겁게 지낼 수 있겠다 싶어서 알파인 스키를 3박4일동안 가르쳐준다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3일 내내 스키 배우고 못타면 환불보장! 스키를 처음 배우면 앞쪽은 모으고 뒷쪽은 벌려서 타는 V자 형태로 알려주는데 3일동안 스키를 타면 그 형태로 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나도 일단은 내려올 수는 있게 됐다.

같이 스키배운 영국사람 (왼), 스키쌤 (오)

3일동안 스키를 하루에 4시간씩, 오전/오후 2시간씩 탄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V자 형태로 타면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을 너무 많이 써서 4시간 타고나면 스키부츠를 벗을 때 다리가 덜덜 떨려서 벗기도 힘들 정도가 된다. 난 처음 타본 스키에 사이즈가 맞는지 안맞는지도 모르고 타서 정강이 통증이 말도 못하게 심했는데 그저 '렌탈이라 그렇지 뭐!'하는 생각으로 진통제를 먹어가며 탔다.


나름 즐겁게 배웠는데... 그 후가 즐겁지 않았다.


일단 오스트리아에서 스키를 타면 흔한 오스트리아 산에서 타는데 해발고도가 기본 1000m 이상이다. 무섭다. 제일 쉬운 곳을 가도 경사가 엄청 가팔라보인다. 오스트리아에서 스키타면서 듣던 말은 항상 부정적인 말뿐이었다.


'성인이 되서 스키를 배우면 절대 잘 탈 수가 없어.'

'뭐가 무서워? 나만 잘 따라오라고!'


초보자 코스도 벌벌 떨면서 내려가는 나를 한번은 중급자 코스로 데려갔다. 중급자인지도 모르고 올라갔는데 올라가보니 중급자였다. 그게 내가 오스트리아에서 마지막으로 스키를 탄 날이었다. 그 날 나는 슬로프를 내려가면서 몇번은 뒹굴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무섭고 서러워서 울면서 내려왔다. 그런 나는 위로와 격려는 커녕 그것도 못하냐며 자기를 못 믿는다고 서운하다는 이상한 말만 들으며 나는 왜 저 사람을 못 믿고 못 타나, 내 자신을 탓하며 울면서 내려와서 더는 타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렸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오스트리아를 떠날 때까지 타지 않았다. 사실 빛이 나는 SOLO로 컴백 후 다시 한번 스키를 타러가려고 했으나 1월 중에도 눈이 오지 않아 탈 수 없었다.


PS. 인스타에서 릴스를 보는데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각 주 (분데스란트)별로 스키에 대한 레벨을 재미로 보여준다.

https://www.instagram.com/p/C2SEvNQNwTp/

여기서 잘츠부르크 - kommen mit den Ski auf die Welt 스키랑 태어남 ㅋ 실제로 서있을 수 있으면 스키타는 애들이 잘츠부르크 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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