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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간호사 Dec 16. 2022

기계처럼, 반사적으로 CPR 하기

뇌출혈 사고 발생 후 너무 늦게 발견된 환자, 조철식-중

뇌출혈 사고 발생 후 너무 늦게 발견된 환자, 조철식-상


"선생님, 이 환자.. 치료 방향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차지 선생님께서 물었다.



"보호자한테 환자 가망 없다고 계속 설명했었는데, 병식이 전혀 없으시더라고요. 수술을 하고, 심장이 안 뛰다가도 CPR 해서 심장이 다시 뛰면, 예전처럼 눈 번쩍 뜨고 공사장에서 다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 같았어요."

3년 차 레지던트가 환자의 OP site를 소독하며 이야기했다. 나는 환자의 머리를 들고 둘의 대화에 경청했다.


"그래서 DNR(*)을 받고 싶어도, 계속해서 희망을 갖고 웃으면서 곧 돌아오겠지 않느냐 얘기만 하셔서.. 동의를 못 받은 상태예요. 이따가 낮에 한 번 더 설명해볼 거긴 한데, 그전에 만약 환자 CPR 치게 되면 그냥 30분 치는 게 의미 없다고 강하게 말씀드려봐야죠, 뭐.."

레지던트는 환자의 머리에 EB를 적당한 텐션으로 감고 고정시키며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차지 선생님은 짧게 대답하고 다시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DNR: Do Not Resustitate. 심폐소생을 거부한다는 내용으로, 흔히 임상에서 DNR동의서를 보호자에게 받았을 때 'DNR을 받았다.'라고 줄여 말한다.



드레싱을 마치고 레지던트는

"바이탈 깨지면, 연락 주세요." 라며 중환자실을 떠났다.



레지던트가 중환자실을 떠나자, 환자 가까이의 전산에 앉아 있던 동기가 내게로 향했다.

인계를 계속 시작하려는 것 같았다.

"NS팀 왔다 간 거랑.. 드레싱 한 것들은 차팅 넣었고, 처치 재료대도 끊어 놨어요."

"네, 감사합니다." 역시, 동기 최고다.

"아, 그 방금.. 주치의가 이야기한 건 카덱스(*)에 안 써놓긴 했는데.."

"음, 그건 그냥 제가 보고 verbal(*)로 인계 넘기거나, 추후 필요할 것 같으면 카덱스에 살려 놓을 게요."

"네, 그럼 마저 인계할까요?"

나는 작게 두 번 끄덕였다.

*카덱스: Cardex, 간호 계획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입력해놓는 간호 계획표라고 볼 수 있다. 병원마다 환자에 대한 기록은 수기/전산으로 입력하며, 프로그램이 다양해 카덱스의 생김새는 모두 다르다. 보통, 환자의 전반적인 정보부터 처방, 검사 결과, 활력징후 등 간략하게 볼 수 있을뿐더러 특이사항 및 인계해야 하는 사항 등을 직접 입력하며 의료진 간의 공유가 가능하다. 인계 시 매우 도움 되는 것 중 하나.

*verbal: 구두/말

.

.


4번째 환자 인계가 시작되었을 시점, 그때 1번 환자의 바이탈이 조금씩 흔들린다. 1번 환자의 인계를 들은 지 불과 10분도 안된 시점이었다. 갑자기 환자 모니터상 심박수가 150대에서 160 대회/분으로 지나치게 빨라지며 혈압도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와 동기가 놀라 알람이 울리자마자 그쪽으로 달려갔다.


이미 스테이션에서 인계를 마친 나이트 차지 선생님이 환자의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내가 주치의 부를 테니까 그동안 인계해."

차지 선생님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우리에게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 이.. 일단, 그렇게 하자." 나는 속삭이듯, 1번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동기에게 이야기했다.

동기는 미간을 펴지 못한 채 인공호흡기에 대해 인계를 줄 것이 있는지 환자의 기계 앞으로 다가갔다.



그때 1번 환자의 모니터에서 응급 알람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심박수가 갑자기 미친 듯이 하강하고 있었다. 차지 선생님의 눈이 커졌다. 


차지 선생님은 환자의 발치에 있는 침대의 CPR버튼을 누르고 재빠르게 환자 왼쪽으로 올라가 가슴압박을 시작했다. 그 버튼을 누르면 의료진이 CPR을 치기 가장 좋은 침대 모양으로, 가장 낮고 가장 flat 하게 침대를 펴준다.

그리고 전부를 향해,

"여기 CPR 좀 쳐볼까?" 또렷하고 낮은 목소리로 목에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나와 동기가 한 껏 당황했다. CPR을 무슨, 내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처럼 이야길 꺼내서 당황했다.



B룸 선생님이 응급 카트를 들고 온 후, 바로 환자 머리맡에 준비되어있던 앰부를 짜기 시작했다. 스테이션에 앉아있던 데이번 차지 선생님께서 신경외과 당직의 와 인턴, 보호자에게 전화를 했다.



"저, 전산은 내가 잡을게요..!" 나는 동기에게 이야기했다. 동기는 눈썹이 산 모양이 된 채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상태였다. 그녀의 식은땀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여기 에피네프린 1A IV (*) 3분마다 주래!!" 스테이션에서 당직의 에게 이 상황을 알렸던 차지 선생님께서 소리쳤다.

*에피네프린: 에피네프린주, 1mg/1ml 앰플 형태. 혈관을 수축하여 혈압을 올리는 데에 사용되어 응급상황 시 많이 사용하는 약물. 혈관 수축 기능이 있어 지혈하는 데에 쓰이기도 하며, 아나필락시스 쇼크 등의 강한 알레르기 반응으로 따른 저혈압에 쓰이기도 한다. CPR시 용법은 IV(정맥주사)가 흔하며, 지혈 시 희석액으로 nebulizer(흡입기 치료, 기관지에 출혈 있을 경우), 직접 상처부위를 지지는 용도, 아나필락시스 쇼크시 IM(근육주사) 등 용법 또한 다양함.


 동기는 다급하게 응급 카트로 향했고, 주사제가 준비된 첫 번째 칸을 열어 에피네프린주 1A을 꺼내 빠른 속도로 쟀다.

"7시 28분, 첫 번째 에피네프린 1A IV 합니다..!"

동기는 환자 모니터에 보이는 시간을 보고 바로 투약한 뒤 환자의 왼쪽, 인공호흡기가 있는 곳으로 향해 suction(*) 준비를 했다.

*suction: 흡입, 임상에서 suction은 여러 경우에 쓰이지만 흔히 목적어가 없을 시 가래 뽑는 과정을 뜻함.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전산에 차팅을 넣기 시작했다.

07:28

pt.monitor EKG상 sudden asystole 보임.
femoral 및 carotid pulse 촉지 안 됨.
BP uncheckable.
both pupil 7mmF checked.
M/S: E checked.
cardiac compression & O2 full ambu-bagging start함.
당직의 및 인턴 call 함.
에피네프린 1A IV done. by 당직의 v/o
보호자(아내)에게 연락하여 위 사항 알리며 내원 안내함.

**** 해석 ****

- pt. monitor: patient monitor,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에게 개인 모니터를 달고 활력징후를 살피는데, 심전도를 간단하게 체크할 수 있다.

- EKG: electrocardiography, 심전도

- asystole: 심장 무수축, 즉, 뜨지 않는다는 것으로 심전도상 flat한 모양으로 보임.

- CPR시 femoral(대퇴), carotid(경) 동맥을 촉지 하여 맥이 뛰는지 확인하는데 두 동맥이 인체 큰 동맥들에 속하며 순환이 잘 되는지 확인해야 하기 위해 동시에 두 군데를 촉지 해야 함. 뛰지 않을 경우 곧바로 CPR 시작함.

- BP uncheckable : EKG가 깨지는 경우 곧바로 기본적인 V/S가 필요하며, 이때 혈압이 체크되지 않을 경우 기입할 수 있는 차팅

- both pupil(양쪽 동공) 사이즈가 7mm까지 커져있는 채로(정상 3mm가량) F=fixed. 즉, 빛에 동공반사가 없다는 뜻. brain damage가 상당할 때 나타난다.

- M/S(Mental Statement, 의식 상태, 정신 상태)

 A: Alert, 명료(지남력이 분명함.)

 B: Drowsy, 기면(졸린 상태, 협조 가능)

 C: Stupor, 혼미(의식 사정 시 어느 정도 점수는 나옴. 즉, 반응이 일정 수준 있으나 협조 안 됨.)

 D: Semi-coma, 반혼수(의식 사정 시 일정 점수 도달하지 못함. 혹은 자극에 아무런 반응은 없으나 인공호흡기상 자가 호흡은 있음)

 E: Coma, 혼수(자극에 반응 전혀 없으며 자가호흡 없음.)

- cardiac compression & O2 full ambu-bagging : 가슴 압박 & 산소를 최대로 하여 앰부 배깅(기도에 산소를 넣음), 즉, CPR.

- v/o: verbal order, 구두 처방






중환자실 문이 열리고

인턴 두 명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인턴 한 명은 가슴 압박을 하고 계시던 나이트번 선생님 뒤 쪽, 한 명은 앰부를 짜시던 나이트 B룸 선생님의 옆 쪽으로 향했다.


"손 바꾸겠습니다. 하나, 둘, 셋-!"

네 명이 함께 소리치며 빠른 속도로 자리를 바꿨다.


시간은 7시 32분, 두 번째 에피네프린이 들어간 지 1분이 지났다. 나는 차팅을 잡으며 에피네프린이 들어가야 하는 시간, 즉, 3분마다 에피네프린 투약을 하며 차팅에 임했다.



.

.


당직의가 들어와,

"에피네프린 처음에 몇 분에 들어갔죠?"라고 물었다.

"7시 28분 CPR 시작과 동시에 선생님 노티 하 바로 들어갔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 음, 보호자 내원하고 계신가요?"

"네. 20분 정도 걸린댔으니까.. 곧 오실 거예요."

데이 차지 선생님이 대답했다.

"네. CPR은 일단 8시까지는 온 힘 다해하고.. 보호자분에겐 일단 다시 설명드려보고 정하는 걸로 하죠."

나와 차지 선생님, 인턴들이 짧게 대답했다.




"이제 나이트번 집에 가, 우리가 알아서 할게."

손을 바꾸고 나온 나이트번 선생님들은 내 어깨를 잡았다.


무언의 토닥임 같은 것,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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