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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간호사 Apr 05. 2023

양가감정 1_행정적 편안함 vs 환자의 안위

파견직 모두가 의료진으로서의 사명감이 1순위는 아니었다. -3


나는 인공호흡기 앞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A룸의 윤석 선생님에게 갔다.

"알람이 울리는데.. high 뭐라고 울리는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알람의 소리는 꺼져있는 상태였다. 인공호흡기의 화면 위 라이팅 부분에서 빨간빛이 깜빡깜빡거리고 있었다.

지금 당장 해결이 필요한 경우, 인공호흡기 상에서 시끄러운 알람 소리와 함께 빨간빛으로 알리지만, 화면을 보니 'Silence' 버튼이 눌려져 있었다. 빨간빛으로 깜빡 거리는 라이팅 부분이, 소리가 없음에도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무슨 알람이었어요?"

".. high.. 뭐라고 떴는데.."



나는 'Event'버튼을 눌렀다. Event 버튼을 누르면 기계에서 일어났던 모든 알람의 기록들이 뜬다. 알람은 high pressure 알람으로 환자의 기도의 이물질 때문에 인공호흡기에 세팅한 값들이 환자에게 제대로 들어가고 있지 못하는 것부터 의심해보아야 한다.


"혹시 suction은 해보셨어요?"

".. 아, 아뇨. 아직 아무것도.."

나는 쭈뼛대는 대답에 가래를 뽑았다. 다행히, 환자의 SpO2에는 변함이 없었다.




순간 나는 무슨 마음을 가지는 것이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아무리 출신 부서가 다르다지만, 파견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 마당에 입사한 지 1주일 된 신규 간호사처럼 허둥대며 알람을 꺼버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차라리, 신규간호사였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가르쳐줄 수 있었다.


사실 중환자실에서 스스로 가래를 뱉지 못하는 환자들의 가래를 뽑는 일은 너무나도 기본적인 일이었다.

인공호흡기의 가장 흔한 알람에 대처해보지 못한다는 것, 무엇인가를 시도해 볼 생각조차 못한 다는 것.

그동안 이곳에서 어떤 시간들이 흘러갔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정규직 간호사들보다 혜택이나 급여가 훨씬 많아 수많은 간호사들이 자신의 정규직을 때려치우고 파견을 하고 싶어 했다. 윤석 선생님은 중환자실에서 일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간호사로 살아온 지 꽤나 시간이 흘렀다 이야기했다.


그렇게 중앙수습본부에 자신이 경력직 간호사임을 어필하고 중환자실에 발령받아 일하기 시작한 지 두 달, 익숙해지기 어려운 업무겠지만 두 달간, 윤석 선생님은 중환자실에서 가장 흔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을 해결해 본 적이 없어 보였다.

그는 두 달간 쓰레기통 비우기, 소변통 비우기 같은 전문성이 덜 부족한 루틴업무 외에는 배우고자 함이 없었던 것 같았다.



'눈치를 주고 무시를 하는 게 맞는 일은 아니지만, 배우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잘한 건 단 하나도 없지 않을까..'

미간이 찌푸려진 채로 가래를 뽑았다.


가래를 뽑느라 쓰게 된 15초,

15초 만에 환자의 인공호흡기 적색 알람은 해결되었다.



나는 파견이 시작된 이후 그 누군가를 비난한 적은 없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위로를 건넨 말들로 인해 괜스레 그들 사이에 낀 기분이 들었다.






".. 여기 세 선생님은 ICU(*Incentive Unit Care, 중환자실) 선생님들이니까  A, B팀 고르게 넣고.. 나머지 선생님들 두 명씩 각 팀에 넣을까요?"

"네.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아요."

본원 선생님들이 다음 날 팀을 짜고 있는 것이 들렸다. 나이트 때마다 다음 날 듀티마다 어떻게 팀을 구성하여 들어갈지 정하고는 했는데 한 팀당 중환자실 출신이 한 명 이상씩은 있어야 한다 했다.


'중환자실 출신 10명 뽑기 전까진 도대체 어떻게 흘러간 거야..'

내가 들어올 당시 중환자실 경력을 가진 간호사들만 10명이 추가로 발령되었는데, 그전까진 인력이 부족한 상태로 돌아갔다는 건가..?

필요에 의해 발령된 기존 파견간호사들이 1인분 역할을 잘하지 못할 수야 있겠다만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 어떤 시간들을 보냈기에 듀티마저 이런 식으로 머리 굴리며 짜야하는 건지 의문이었다.



순간 불이익을 느꼈다. 내가 팀을 바꾸고 싶을 때 무조건 서로의 경력을 고려하여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일한 지 3주가 되어가도록 그렇다 하게 힘들 만큼 바쁜 적이 없었다.



빨간 날이다 뭐다 하며 폭등할 것으로 예상되고 미리 파견 발령 되었는데 막상 수가 줄어들지 않아 잘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줄어드는 양성자 수에 기뻐함과 곧 파견이 잘리겠구나.. 를 동시에 느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

.




'.... 총 10명의 선생님들은 이번달 29일 금요일이 파견이 마지막 날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병원에서 메시지 하나가 왔다. 총 10명의 이들이 문장 앞에 나열되어 있었는데, 나를 포함해 함께 같은 날 발령된 중환자실 출신 간호사 10명의 이름이었다.



'......'

모두가 메시지를 보고 말을 잃은 듯, 적막만이 흘렀다.






안녕하세요. 오늘입니다.

3월 말 시험이 있어 최근엔 특히나 업로드가 늦었습니다.


이번 편은 지난 두 편에 이어 코로나19 전담 병원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사명감에 대한 이야기 세 번째입니다.


실제로 파견직들은  발령 시 경력에 고려하지 않은 부서 발령으로 인해 트러블도 생겨나기도 했고, 그 와중에 급여만이 중요하여 업무의 최소한만 하려고 하는 파견인력들도 있었죠. 당시 파견직들은 하루 만에 불려 가기도 하고, 당일에 잘려 나가기도 하여 '파리 목숨'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번 글에서 가볍게 나타낸 것처럼 파견직들은 의료진으로서의 능력치보다 행정적으로나, 병원에서의 아첨 등에 의해 이어지거나 잘리기도 했습니다.


과연 환자가 어떤 병원에서 어떤 의료진들에게 케어를 받고 싶을지, 의료진으로서 무엇을 중시하며 일을 해야 할지 모두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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