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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간호사 Apr 27. 2023

양가감정 3_공익 vs 사익

파견직 모두가 의료진으로서의 사명감이 1순위는 아니었다. -5



"파견 잘리기 싫다고, 돈 벌어야 된다면서 확진자 늘었으면 좋겠다 노래를 부르고 다니시더니.."

".. 무, 뭐라고 했다고요?"

찌푸려진 인상을 펼 수가 없었다.


.

.


그는 근무지에 오면 항상 처음으로 하는 일이, 코로나 라이브를 들어간 후 확진자가 더 늘어야 한다는 소리를 내뱉었다고 한다.

집에서 혼자 보면 되지 그걸 왜 밖에서, 병원에서 내뱉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 저한테까지 만약 그 소리하면 저 진짜 화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내가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고작 이 말 뿐이었다.

그가 내게 와 실제로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그에게 달려가 무엇이든 뭐라고 할 명분이 없었다. 증거도 없이 누군가 그에 대해 이야기한 것에 대해 뭐라고 하는 꼴뿐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제발, 제발 본원 선생님들 귀에는.

그러니까 국가에서 책정된 급여를 받는 것이 아닌 본인이 원래 받던 급여보다 끽해봐야 위험수단 몇 십만 원 조금 더 붙은 급여를 받는 그들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으면 했다.


본원 소속. 즉, 파견직이 아닌 '정규직' 간호사들은 끽해봐야 위험수당 몇 십만 원 정도의 차이. 혹은 그 마저도 못 받아가며 원치 않게 코로나19 환자를 위해 일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결국 정규직 간호사들의 급여와 파견직 간호사들과 급여가 몇 배씩 차이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파견직과 정규직의 업무량에 큰 차이가 없는 경우 정규직 간호사들은 이것이 차별이고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며칠 전, 어떤 병원에서 본원 간호사들파견 간호사들이 자신들보다 돈을 몇 배로 많이 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부당함에 화가 치밀어 은근슬쩍 파견직들을 태우거나, 자신은 저들보다 덜 버니 덜 일해야 마땅하다 느껴 8시간 내내 단 한 번도 오염존으로 들어오지 않는 경우들도 허다했다.

즉, 후자의 경우, 전산에 올라가는 환자들의 모든 의료기록은 본원 간호사들의 이름으로 올라가지만 기본 사정조차 직접 하지 않고 파견직들에게 보고받아야 했다.

그리고 오염존에서 일어나는 모든 간호 행위들, 그러니까 환자에게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간호 술기들은 정작 이 병원의 소속이 아닌 파견 간호사의 책임이었으나 문제가 생길 시 아무것도 대처하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파견 간호사들은 그 급여를 유지하고 싶어서, 그러니까 파견에서 종료 통보를 받고 싶지 않아서 말도 안 되는 일을 요구해도 군말 없이 해내는, '말 잘 듣는' 간호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떠한 방향으로 환자를 케어해야 효율적이고 정확한 지 앎에도 눈을 가려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파견 간호사가 "코로나19 감염자가 늘어야 한다."라고 하는 말은 정말 자신의 이익 말고는 나은 것 하나 없었다. 그래. 만약 액팅은 파견직이, 차팅은 정규직이 하는 식으로 역할을 나눈 병원에서 굳이 장점을 뽑자면 본원 간호사들의 체력적인 부분이 편해졌을 수도야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라도, 코로나19 감염자가 늘어야 한다 바랄 수는 없다. 우린 의료진이니까-.






며칠이 지나 한 주의 시작. 월요일이었다.

"허-허, 선생님.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요."

교대시간이 되어 나는 간신히 오염존에서 벗어났다. 나와 팀원들은 나오자마자 곧장 안에서 사용한 신발을 벗기 위해 휴게공간으로 향했다. 땀에 젖어 촉촉해진 머리가 산발이 된 채로, 우린 눈이 마주치자 해탈한 듯 웃음이 삐져나왔다.


며칠 전부터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고 중환자들도 부쩍 늘어나서 정신없이 바빴다. 모든 선생님들이 오염존에서 나올 때면 온몸이 땀에 절어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휴게 공간으로 이동했다. 오염존에서 나오면 오염존에서 사용한 하얀 신발을 벗어 앞에 있는 샤워시설에서 씻어야 했는데, 신발 벗는 것조차 힘들어 간신히 벗었다. 털썩 주저앉거나 탈진된 몸으로 누워버리고 싶었지만, 자신의 몸에 바이러스가 붙어 있을까 봐, 그리고 땀 때문에 찝찝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러기 위해선 등목이라도 하고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모두가 갑작스레 바빠진 상황을 체감하느라 정신이 혼미해진 듯했다.


".. 워, 월요일이라서 더 그런 거겠죠..?"

우리는 자기 최면을 한다. 월요일이니까, 한 주의 시작이니까-. 월요일 아침마다는 회진이 있을 수 있어서, 주말 동안 안 보이던 것들을 보고 나니 추가로 낼 오더가 너무 많을 수도 있어서.

내일은 아니기를 바라보았다.


"아뇨. 그냥 인력이 부족한 거죠."


.

.


다음 날 아침, 긴장된 채로 출근길을 걸었다.

혹여나 월요일이 아닌 오늘도 어제처럼 혼 빠지게 바쁠까-? 걱정이 앞섰다.



"선생님, 얘기 들으셨어요? 선생님들 새로 오신대요."

병원에 도착해 휴게공간에 들어가 파우치를 내려놓으며 인사를 건네자 눈앞에 있는 선생님이 눈이 초롱초롱해진 채로 말을 건넸다.


"아, 진짜요? 이미 확정이래요?"

"네. 듣기로는 10명 정도 된다고 하던데요? 대신 환자 베드도 늘리나 봐요. C룸 3-4베드(*) 정도?"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바쁜 와중에 새로운 멤버가 10명이나 들어온다는 소식은,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곧장 스테이션으로 가 인계를 기다렸다. 인계 전, 수선생님께서 공지할 것이 있다며 들어오셨다.


"확진자가 늘어난 관계로 우리 병원에서도 환자를 더 받아야 되는 상황이 왔어. 수요일과 금요일에 나눠서 총 10명의 파견직 선생님들이 추가로 오실 예정인데, 수요일 4명, 금요일 6명. 다들 중환자실 출신이라고 하니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어쨌든, 오늘은 일단 열심히 뛰어다녀야 해.



.

.


드디어 수요일,

".. 아, 안녕하세요."

휴게공간에 파우치를 놓으러 왔는데 모르는 얼굴이 넷, 그들은 옹기종기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제 인계 들으러 스테이션서 스탠바이 해야 해서요."

기존 멤버 중에 들어온 지 가장 오래된 파견직 선생님이 시계를 보며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인계시간 5분 전이었다.

그들은 말없이 소파에서 일어나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

.


인계 시작 전, 본원 선생님들은 뒤의 칠판에 보이는 팀 구성원들을 보며 동그라미를 치기 시작했다.

"화이트보드에 동그라미 친 선생님들이 새로 오신 선생님들 프리셉터처럼 가르쳐주세요. 오티(*Orientation, OT) 기간은 1주일입니다." 본원 선생님들 중 가장 연차가 높으신 선생님이 이야기했다.


"선생님, 선생님도 들어오셨을 때 OT기간이 있었어요?"

나는 옆에 서있는 나보다 3주 먼저 들어온 또 다른 파견직 선생님에게 작게 속삭였다.

".. 아, 아뇨. 그런 건 없었죠. 그냥 무턱대고 방호복부터 입었었는데.."

나는 '저도요.'라고 작게 읊조렸다.


OT기간, 파견 간호사에게 OT기간이라는 것이 이례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배우기 위해 일에서 얼마나 배제될지 알 수 없었다. 투입돼서 바로 일해 줄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해서 파견직 간호사를 받은 것일 텐데-? 이전에 없던, 아니 나에겐 없었던 OT기간이 필요하다니, 괜스레 뾰로통해진다.


.

.


"선생님은 파견 처음이세요?" 파견직이 파견직을 만나 인사 외에 처음으로 건네는 단골 질문다.


"네. 처음이에요."


그녀의 이름은 서소영으로 간호사를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다 이야기하였다. 

"아, 선생님은 어느 중환자실에 계셨었어요?"

".. 음, 저는 수술실에 6년 있었고 신생아 중환자실 4년이요."

아차-. 수술실과 중환자실은 하는 일이 완전히 달랐다. 게다가 생아 중환자실에서 다뤄지는 질병들이나 도구들, 처치 방법들 또한 성인과 확연히 달라서 사실상 신생아 중환자실의 경력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볼 수 있었다.


즉,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

.


오늘 데이 1팀으로는 나와 새로 온 서소윤 선생님을 포함해 총 4명이었다.

그녀를 도맡아 가르치기로 한, 채준영 선생님이 오염존 내에 들어가기 전부터 방호복 입는 것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마, 병원 첫 오티 때 원내 파견 담당자가 가르쳐주었겠지만.


오염존에 들어가자마자 나와 최수빈 선생님은 양끝으로 흩어져 각자 환자를 사정하기 시작했다. 채준영 선생님과 서소윤 선생님은 나를 따라 A룸으로 들어왔다.


"데이 첫 번째 팀으로 들어오게 되면 환자들을 한 명 한 명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사정해야 해요. GCS부터 동공사이즈, 가래 뽑아보면서 가래양상도 한 번씩 체크하고.."

채준영 선생님은 내 뒤에 서서 새로 온 선생님에게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설명했다. 뭐지-. 뭔가 감시당하는 기분이다.


모든 환자의 exam을 마치고 칠판에 환자 상태를 적어 본원 선생님들에게 보여주었다. 이후에 틈틈이 시간을 내어 소독제가 충분히 남아 있는지 확인해야 했고, 소변통을 소독하는 락스물도 갈아주어야 했다. 나와 최수빈 선생님은 환자베드마다 비치되어 있는 소독제는 대충 확인했기 때문에 이제 카트와 PC앞에 비치되어 있은 소독제들과 오염처리 락스물만 갈면 되었다.  


"이제 저희 락스물.. 그 통만 갈면 되죠?"


채준영 선생님과 서소윤 선생님은 B룸의 인공호흡기 환자 앞에 있었다. E-tube Cuff Pressure 측정 방법과 인공호흡기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 나와 최수빈 선생님은 그쪽을 보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속으로는, 아직 할 것이 많은 데 꼭 지금 저런 이론을 가르쳐야 할까 싶었다. 동시에,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이 온 것이구나.라는 생각에 엊그제 수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이 떠올랐다.


다들 중환자실 출신이라고 하니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 음성이 기억의 뇌리에 스쳐지나가고, 순간 나 홀로 눈이 휘둥그레 해진 채로 허공을 바라보던 내 동공이 흔들렸다. 그렇게 2초간 정적이 흐르고 최수빈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그거 제가 할게요. 선생님."

".. 아, 아니에요. 같이 해야 될 거에요. 그거 엄청 무거워서 혼자 못해요. 지금 할까요?"

"네. 갈까요?"

우린 함께 물처리실로 향했다.


우리는 수 십리터가 들어있는 통을 비우기 위해 있는 힘껏 넘어트려보려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둘이 해도 잘 되지 않았다.




"지금 두 선생님은 이 통을 갈려고 하는거에요. 데이 1팀이 한가할 때 하는 일이에요."

우리가 낑대는 동안 뒤에서 채준영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는 목소리에 순간 어이가 없어 그를 멍하니 쳐다봤다.


".. 선생님들, 둘이서 하기 어려운데 도와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내 말엔 꾹꾹 눌러 담은 일종의 '열받음'이 있었다.

그는 "허허, 말을 하지.." 라며 멋쩍어하며 손을 보탰다.



미간이 잠시 찌푸려졌지만-.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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