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아닌데, 닭가슴살만 먹는 것처럼 삶이 퍽퍽하다. 부대에서의 일이 그렇고, 아이들 기르는 것이 그렇고, 아내와의 관계가 그렇고, 무엇보다 신앙생활이 그렇다.
내 통제를 벗어나는 그런 일들이 연속되면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성질을 부리며 하나의 못난 인간이 되어 버린다.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놓고 본다면 그렇게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일 수 없을 텐데- 화를 내는 동안에는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불길이 화르르 타올라 시야를 가리는 것만 같다.
자제력을 벗어난 불길은 한 번 시작되면 초가삼간 다 태우고 나서야 사그라든다. 뭐 하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무기력하다. 심지어는 크리스천이라고 스스로를 지칭하며 살아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면 나는 나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진짜 크리스천인가.
"어, 수요일 저녁에도- 일요일 저녁에도- 교회에 가. 십일조도 하고 말이야. 술도 마시지 않아."
아주 그럴듯한 포장지로 어설프게 둘둘 감았다. 내용물은 너저분한 질그릇인데 포장지 한 번 화려하다. 찬찬히 생각해 보니 나는 크리스천의 포장지만 입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나가 스스로를 선지자로 칭하고, 다른 선원들 앞에서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을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배를 타고 도망간다고 해서 하나님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하나님께 그렇게 화를 내고 죽여달라고 하면서도 살기를 바랐던 것일까? 요나의 눈도 어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불길이 화르르 타올라 가려져 버린 것일까.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정확히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리고 나와 비슷한 어떤 성도들은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성화되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대로 성질부리고 짜증을 낸다.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직후에만 거룩한 척, 서원을 지키려는 척 행동하면서 말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나의 주관 사이에서 크리스천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말이다. 요나가 나요, 내가 요나인 것이다.
한편, 요나서를 읽으면서 또 한 가지 인상 깊은 것은 마지막 박넝쿨 그늘이 사라지고 동풍이 불어오는 장면이다. 어제만 해도 박넝쿨 그늘로 그렇게 좋아했다가 이제 다시 성질을 내고 죽겠다고 하는 꼴이 참. 혀를 차며 요나를 비난하려고 보니, 내가 먹고 마시며 편히 앉아서 배 두드리고 있는 푹신한 소파가 박넝쿨이요, 내가 일상에서 짜증 내고 있는 상황이 동풍이 분 상황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는 이렇게 인내하는 거야"라는 표본을 보여주시는 듯,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한번 요나를 가르쳐주신다. 박넝쿨로 화를 내는 것이 옳은지, 박넝쿨도 그렇게 아끼면서 하나님이 니느웨 백성을 아끼시는 것을 왜 모르는지 말이다. 그 이후에 요나가 다시 말대꾸를 했는지,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바라는 대로 죽게 했는지, 회개하고 거듭났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모르겠다. 하지만 씩씩 거리는 요나의 숨소리가 성경 너머 여기까지 들리는 것만 같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나약함을 아시고, 큰 물고기와 박넝쿨, 동풍을 미리 예비하셨다. 그리고 그 말씀을 기록하여 말도 안 되는 것들에 성질부리고 있는 나약한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가르치시고 계시다. 우리의 죄와 교만이 아직 주님 앞에 상달되지 않았는지, 아직까지 주님의 깊은 인내심을 가지고 찬찬히 가르쳐주고 계시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무언가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회초리가 날아오기 전에 말이다.
올해로 내 나이가 서른여덟 살이 되었다. 베데스다에서 병자가 38년간 머물렀던 것처럼 변화되지 못하고, 일어나 빛을 발하지도 못하고 교회 근처에나 기웃거리며 병자처럼 누워있었다. 내가 수고도 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수시로 화를 내고 신세를 원망하면서 말이다. "오, 누군가 나를 저 물에 넣어줬으면 지금쯤 깨끗하게 나아서 남들처럼 잘 살아가고 있을 텐데." 혹은 "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민구야~' 한 번 불러주시고, 재물의 복도 부어주시면 남들처럼 교회 봉사도 더 하고 새벽예배도 나갈 텐데" 이런 말이나 되뇌면서 말이다.
불길이 꺼지고, 정신을 차리고 나면 하나님께서 인내심을 가지고 이렇게 가르치시는데, 이제는 좀 일어나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이 움직일 때 누가 나를 물에 넣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하나님께서 요나서를 통해서 나에게 가르치시는 말씀을 듣고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하는 순간이 된 것 같다. 이렇게 살다가는 또 광야 한 바퀴 돌고 돌아 세월을 나 보내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크리스천 포장지를 좀 뜯어내고 진짜 크리스천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