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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ot Jul 05. 2020

그만 먹어! 나 아직 2개 밖에 못 먹었단 말이야

치킨보다 중요한 것




우리 집 자매들은 어릴 적엔 먹을 것에 욕심이 많아서 먹을 걸로 자주 다퉜다. 특히 치킨 한 마리를 시켰을 경우, 셋이서 한 마리도 다 먹지 못 할 거면서 다른 사람에 비해 본인이 못 먹을까 봐 싸우곤 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아빠의 영향이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어린 딸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마다 밥을 먹는 속도가 빨랐다. 어린 나는 아빠를 이기겠다는 이상한 목표를 세우고선 아빠를 따라 음식을 빨리 먹기 시작했다. 나의 노력 아닌 노력으로 아빠보다는 느려도 동생들보단 빨리 먹게 되었을 때, 나는 동생들에게 요주인물이 되었다. 




어느 날 우리 집 식구 다섯이 둘러앉아 치킨 한 마리를 앞에 두었다. 

나와 동생들은 치킨의 등장에 신이 났고, 제각각 열심히 먹어댔다. 그러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즈음 막냇동생이 억울했는지 울음 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그만 먹어!! 나 아직 두 개밖에 못 먹었는데 왜 벌써 5개나 먹은 거야?!










멈칫하며 내 접시를 보니 정말 뼈가 5개나 쌓여있었고, 동생의 접시 위에 뼈는 2개뿐이었다. 동생은 언니가 맛있는 치킨을 빨리 먹어버리니 자신이 먹을 양이 부족해질까 봐 두려워서 내게 빽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어릴 적의 나는 나의 먹성에 위협을 느낀 동생들에게 '그럼 너네가 빨리 먹어' 라며 매정하게도 난 너희를 위해서 음식을 먹는 속도를 낮춰 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동생들은 나름 머리를 굴려 자신의 치킨을 사수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치킨의 조각은 한정적이다. '이대로 가다간 난 언니보다 3~4개는 못 먹을 거야.'라고 생각했는지, 본인의 앞접시에 맛있는 부위의 치킨 조각을 골라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막냇동생도 똑같이 따라 했다. 그렇게 동생들이 치킨을 가져가고 남은 것은 퍽퍽 살의 치킨뿐이었다. 그날 뒤로 동생들은 맛있는 음식을 나와 함께 먹을 때면 본인들의 양을 접시에 미리 덜어놓곤 했다. 








음식을 빨리 먹다 보면 좋은 점이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맛있는 음식을 더 빨리, 더 많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음식을 빨리 먹다 보면 함께 식사하는 상대방을 볼 여유가 없고,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할 시간이 없다. 음식을 먹는 것에 온 정신을 집중하기 때문에 주변을 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였다. 내가 음식에 집중하는 동안 자리에 함께 있던 상대방은 허공에 말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음식에 집중하느라 바쁜 나는 무성의하게 상대의 말에 고개만 끄덕거렸을 뿐이니까.


그것을 깨닫고부터는 내게 더 이상 음식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할 때면 상대방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상대가 말을 쉬어갈 타이밍에 음식을 먹으며 배를 채운다. 그렇다고 빠르게 먹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음식을 빠르게 먹으면 체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정속도를 유지한다. 내가 음식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나서부터는 동생들과 함께 치킨을 먹을 때, 동생들은 더 이상 앞접시에 본인들의 양의 치킨을 쌓아두지 않았다. 









어릴 때는 누가 더 많이 먹냐는 것 때문에 동생들과 종종 다투었지만, 크고 나서는 음식에 대한 욕심이 많이 사라진 편이다. 먹는 것보다는 음식을 함께 먹는 누군가에게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내겐 식욕보다 중요한 건 함께 음식을 먹을 상대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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