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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ot Jun 20. 2020

저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에요

더 이상 종이 쪼가리는 싫어요




2020년 3월,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다.


평소와 같이 새벽 6시에 일어나 세수만 하고 책상 앞에 앉아 오늘치 분량의 한자성어를 외우고, 국어 독해를 풀었다. 30분 후 아침을 먹었고, 양치만 하고 바로 책상 앞에 앉아 행정법 인강을 듣기 위해 써니 행정법 총론을 펼쳤다. 그리고 펜을 드는데 문득 나 자신이 인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을 봤다. 그곳엔 기계적으로 하루하루를 반복하고 있는 한 사람 모습을 한 로봇이 서 있는 것 같았다. 대충 묶은 머리에,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검은색의 편해 보이는 티셔츠에 밴딩 팬츠를 걸치고, 분홍색 삼선 슬리퍼를 신은 감정 없는 로봇이 서 있었다. 매일 보는 모습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초라했다.






그거 아는가?


공시생은 하루에 말을 할 일이 1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

아니, 하루에 10분도 말할 일이 없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무렵의 나는 분명 나의 인격이 존재하는 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았으며,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을 즐겼다. 긍정적인 사람이었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 얼굴에서 미소는 사라져 갔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눈을 마주 보는 것을 가장 좋아했던 내가 스스로 눈을 깔고 피했으며, 다른 이에게 무언가를 양보하는 것보단 나의 것을 먼저 챙기려는 이기적인 행태를 보였다. 긍정적인 사람은커녕 사고가 부정적으로 바뀌어갔다.


그것을 알아차렸을 즈음엔 이미 나는 내가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공시 공부를 하는 동안의 나는 사람이 아니다. 공부하는 기계일 뿐이다!


처음 목표로 했던 대로 나는 공부하는 기계가 되었다. 그런데 막상 기계가 된 나의 모습을 보니 안쓰럽고 서러웠다. 이게 정말 내가 바라던 것이었나? 사람답지 않게 사는 것. 비록 공무원이 되기 위한 과정이고 어쩔 수 없다고는 하나 과정이 즐겁지 않은데 이 상태로 공무원이 된다고 해서 정말 행복할까? 그게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일까? 만약 내가 원하는 것이 공부하는 기계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 인생을 몇 년씩 갈아 넣어도 될 만큼 공무원이 되고 싶은가? 

이제와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제라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결국 스스로 그만하자고 결정하게 되었다. 부모님께 공시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이 아까우니 9급이라도 시험을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시며 공부를 더 할 것을 추천하셨다. 하지만 나는 원 없이 공부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이 시험에 더 이상 나를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 아빠. 내가 한다고 해놓고 중간에 이렇게 그만둬서 미안해. 그런데 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정말 최선을 다 했고, 그걸로 만족해. 이렇게 무언가에 나의 온몸, 온 기운을 쏟아 열심히 살아본 경험을 쌓은 거잖아. 그럼 다른 것을 하더라도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어. 난 할 수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 날 좀 믿어주면 안 될까?




다행히 부모님도 나의 선택을 받아들여 주셨다. 

그런데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시험을 준비했던 3년간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 꽤 막막했다. 그렇게 놓지 못하던 것을 놓게 되어 후련하면서도 스스로가 너무 작아져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다시 나 자신으로 나답게 살고 싶었다.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이대로 작은 종이 쪼가리마냥 앉아있을 순 없었다.










다음을 이어서 쓸 예정입니다. :)

다음 편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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