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주고 싶지 않아요.
어릴 적부터 나는 매사에 쓸데없이 자신감이 넘치는 아이였다.
학교에서 발표시간이 되면 손을 들고 발표하는 것을 좋아했고(발표는 열심히 했지만 보통 다 틀려서 친구들에게 웃음만 안겨준 적이 더 많았다.), 친구들이 앞에 나서기 힘들어 할때 오예- 하며 앞으로 곧장 달려나가는 그런 아이였다.
대체로 무얼 하든 겁을 집어먹는 경우가 없어서 친구들과 담력 테스트를 할 때면 겁먹은 친구들을 위해 앞장서서 길을 터줬었다.(혼자선 무서우면서 꼭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강해진다.) 이런 나의 장점을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어서인지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그게 뭐든 스스럼없이 내뱉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 장점은 곧 단점이 되었다.
한 번씩 생각 없이 말을 하게 되어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적이 있었다. 두려웠다. 나로 인해서 누군가가 상처를 받는 것은 그이가 나를 미워할 계기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무서워졌다. 그래서 스스로를 바꾸기위한 방법을 생각해보았고, 말수를 줄여보기로 했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말을 줄이면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겠지 싶어 가장 간단하면서도 쉽게, 말하는 횟수를 줄이기로 한 것이었다.
그 결과 반은 성공이고, 반은 실패였다.
말을 줄이면서 나는 점점 청자가 되어갔다. 항상 화자였던 나에겐 그것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기에 점차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자신감을 잃어갔으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졌다. 대화를 나눌때 어디에 서 있어야할지도 알 수 없어졌다. 혼자 검은 공간에 외따로 떨어져있는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기 위해 말수를 줄이는 방법을 택한 나는 사람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자신감을 조금씩 잃어갔다.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었으니 말수를 줄이는 것은 내게 독이 되었다. 나에게서 넘치는 자신감을 빼면 시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딱 그 꼴이었다.
무조건 말을 줄이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라 생각하여 제대로 된 방법을 찾고자 어떻게 하면 좋은 청자가 되면서 좋은 화자가 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스스로 고민하며 찾게 된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먼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해서 듣고 상대방에게 어떻게 나의 생각을 말하면 좋을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당장 두서없이 말을 꺼내는 것보단 한번 생각을 거치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머릿속에서 갖는 이 방법은 다행히 내게 꽤 잘 맞는 방법이었다.
이후 나는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든 간에 나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갔다. 나로 인해서 누군가가 상처를 받는 것은 스스로에게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는데 머릿속에서 한번 생각을 거치고 말을 하니 혼자서 정리하는 시간을 버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만 좋은 일은 아니었다. 내 주위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함께 대화하기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조금씩 심어졌다고 느꼈다. 대학교때 같이 일했던 선배가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지수야, 너는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어.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 너는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줘. 그래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해서 자신감을 갖게 해줘.
그때 처음 알았다. 말하는 것을 좋아해 말을 함부로 내뱉는 경향이 있었던 점을 관리하게 되면서 나의 단점이었던 것이 강점이 될 수 있다니!
그 선배로 인해서 알게 된 점은 나는 청자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말하고 있는 사람의 말에 경청한다. 이 점이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좋게 받아들여질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나는 오로지 나의 단점을 고치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말하는 사람에게 자신감을 선물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아직 부족한 사람이지만 분명 앞으로도 나의 단점을 발견했을 때, 혹은 누군가 말해주었을 때 단점과 제대로 마주보고 관리하고 변해가려고 노력할 수 있길 바란다.
*혹시 이 글을 보신 분이 계시다면, 자신의 단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고 변화하려고 노력해본 적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는 것부터 변화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제 글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주저없이 댓글 남겨주세요. 저와는 다른 삶을 살아온 분들의 생각을 읽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이라 생각합니다ㅎㅎ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