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이를 키울 때 비로소 나를 이해하게 된다.
7살의 레온과 함께 하는 순간은 7살의 나를 마주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나는 지금 독일에 있는 한 가정집에 머물고 있다. 매일 네 시간 이상씩 내 꼬마친구, 레온과 놀아주는 것이 나의 주요 일과 중 하나다. 레온과 함께 있다 보면 나도 세상을 레온처럼 보게 된다. 집과 유치원 사이에 놓인 일상적인 길도 매일 꼼꼼히 관찰하면서 가게 되고, 독일어가 너무 어려워 좌절을 하려다가도 혼잣말로 오늘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들을 중얼거리는 레온을 보며 언어를 배우는 것은 원래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레온과의 일상이 끝나면 그의 가족과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방식과 독일에서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 다르다 보니 그들의 행동양식을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한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독일 가정에서 살아가는 것은 의외로 장점이 많다. 아이들의 자립심을 길러주는 부분에서 특히 배울 부분이 많다. 내 나이는 이십 대 중반이지만 나의 어떤 부분들은 아직 7살에 머물러 있는데, 독일 가정에서 살아가다 보면 그들로부터 문제를 대하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 그렇게 성숙하지 못했던 나의 일부분도 점점 성장한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한때는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이 너무 부러워서 가족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한없이 행복해 보이기만 하는 친구가 생겼을 때는 이런 질문을 하기도 했다.
"너는 살면서 한 번쯤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그 아이는 대답했다.
"음... 없는데? "
그 대답은 정말이지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한 번도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을 수 있지? 사람이라면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만큼 삶에 대한 어려움이 없었던 거겠지, 라며 그 아이의 인생을 단정 지었다. 그리고는 내가 자란 환경을 원망했다. 나도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이런 불행들은 모르면서 자랐을 텐데, 하면서.
사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주 불행한 환경에서 자란 건 아니다. 물론 아주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니지만. 엄마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혼자서 나를 키우기 위해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이모와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그렇다면 그들이 나에게 구박을 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랑을 받으면서 자란 쪽에 속한다. 어쩌면 나는 지금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다. '불행하지 않은 삶'이 아니라 '행복한 삶'. 그래서 '행복해지는 법'을 아는 양육자 밑에서 큰 아이들이 부러웠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와서 양육자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겼을 때, 특히 겉으로 보기에 마냥 행복해 보이는 독일 가정에 살게 되었을 때는 정말 신이 났다. 드디어 나도 '행복해지는 법'을 알게 되는구나, 하며 앞으로의 삶을 기대했다.
나는 지금 독일에서 산지 3개월이 다 되어간다. 그래서 결국 나는 행복해지는 법을 결국 알게 되었을까? 그 질문에 '그렇다'와 '아니다' 중 굳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그렇다'라고 대답하고 싶다. 물론 매초마다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힘든 상황에 부딪혔을 때나 사람들과 갈등이 생겼을 때 부드럽게 해결하는 방법을 배웠다. 나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남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과정을 '레온과 나' 시리즈를 통해 여러분과 그 여정을 공유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