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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ttoo May 12. 2024

'열심히' 하는 공부만 정당할까?

ㄴ노란색 머리칼을 가진 언니(2)


이번 전교 1등은 졸릴 때마다 샤프로 자기 다리를 찍어가면서 공부한다는데...
너네들은 뭐하냐?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한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이와 비슷한 결의 말들로 뒤덮힌 학교에서 생활을 한 덕에 공부는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려버렸다. 지금은 내가 만난 그 언니 덕에 공부의 즐거움을 안다. 행복하게 배우는 법을 터득했다. 하지만 그것을 조금 더 빨리 알게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들은 그 선생님의 말은 '우리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해서라도 공부를 하는 것'이 전혀 문제점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공부를 하라고 권장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 시간들만이 가치 있다고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우리는 '열심히' '고통스럽게' 노력해야 했고, 그렇기에 우리는 공부하는 시간이 괴로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시간에 항상 죄책감을 느꼈다. 그 죄책감은 내 즐거운 나날들을 스스로 반납하게 만들었고, 내 삶은 점점 힘든 시간으로 얼룩져 갔다. 그리고 나는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삶이 힘들다고 느껴지는 것. 그게 곧 내가 노력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니까.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공부를 잘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언니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언니는 즐겁게 공부했다. 직접 한국에서 유행하는 웃긴 짤도 찾아보고, 단어 카드도 만들고, 일기도 쓰며 공부와 데이트하는 것을 즐겼다. 언니는 단시간 고효율로 공부할 수 있는 강의나 수업을 듣는 것은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무언가에 호기심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런 조그마한 호기심이 결국 무언가를 즐기게 해주는 물꼬가 되는 거니까. 


그 언니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

일이 끝나고 공부하러 집에 가는 게 기다려진다고 하니, 그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가 연인을 만나러 갈 때 잔뜩 기대하는 것처럼 언니는 공부를 하러 갈 때가 제일 설렌다고 했다. 

하기야 '사랑'의 정의를 생각해 보면 쉽게 납득이 가긴 한다. 사람마다 '사랑'에 대한 정의가 다르겠지만, 내가 정의하는 사랑은 '계속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같이 있고 싶지도 않다. 내 평생의 시간을 그에게 쏟아 부울 생각이 들질 않는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에 그의 곁에 머물고 싶어 진다. 

언니는 공부를 사랑하니 공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고, 공부의 양이 절대적으로 많으니까 공부를 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에 비해 나는 언제나 공부를 하는 시간이 적기를 바랐으면 바랐지, 많기를 바란 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시험 시간에는 늘 공부가 하기 싫어 평소에 하지도 않던 방청소를 열심히 했고, 공부를 최대한 적게 하고 싶어서 가장 효율적인 공부 방법을 찾아 헤맸었다. 공부하는 시간은 늘 지루함과 힘겨움의 연속이었다. 물론 그 시간들을 참고 견디다 보면 공부가 재밌던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공부하는 시간을 피하고 싶어서 몸부림을 쳤다. 나는 공부를 사랑하지 않는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언니를 보면서 깨달았다. 

'아, 무언가를 힘을 들이면서 하는 게 꼭 정답은 아니구나.'

결국 힘이 잔뜩 들어가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내가 하는 일이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부정적인 감정의 연속은 무언가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배움은 그 자체로 무한한데, 배움과 함께 하는 시간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뒤덮이면 우리는 배움에 '끝'을 정하게 된다. 더 이상 배움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나를 갈아서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만들지 않으면 모두 소용없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혹여나 자신의 일을 즐기면서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놀고 있네'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멋대로 판단했다. 


문득 내 고등학교 시절, 어학원 다닐 때가 떠올랐다. 그날의 주제는 이거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적게 벌겠습니까?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겠습니까?

7년 전,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연히 전자죠.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인데, 돈을 적게 받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그 일을 해야 하는 명분은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때의 나는 행복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고,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지도 머릿속으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을 공부에 적용하지는 못했다. 공부를 할 때도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그때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즐겁게 배우는 것도 가치 있다는 것을. 또한 그런 즐거움은 내가 직접 찾을 때 나타난다는 것을. 내가 배움에 애정을 부울 때 즐거움이 지속된다는 것을. 그 언니를 통해 알게 되었다. 

사랑은 배움의 동력이다. 어떤 음식을 사랑하게 되면 그 음식에 대한 단어와 표현을 배우고 싶어 진다.

사랑과 함께 하는 배움은 영속적이다. 사랑과 함께 하는 배움은 초반에 서툴러도, 중간에 실수를 해도 그를 인정하고 용서하고 나아가게 도와준다. 


그렇게 우리는, 비로소 즐겁게 배울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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