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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uttoo Jun 22. 2024

해외에서 생활할 때 제일 필요한 것

ㄹ라오스에서 만난 언니(1)

흐어아앍!


대학교 일이 끝나자마자 정장 차림으로 오토바이 위에 올라탔다. 찜기 속 같은 열기로 가득 찬 도로를 겨우 견뎌내며 집에 오니, 매연 때문에 참고 있던 숨이 저절로 내 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을 통해 쏟아져 나온다. 그대로 소파에 누울까 하다가, 가방만이라도 제자리에 놓자, 손이라도 씻자, 옷이라도 갈아입자 하며 소곤소곤 나를 달래며 해야 할 일을 차근차근 해냈다. 그렇게 조그마한 일만 해내는 거면서도 그다음에는 무거운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얼른 눕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차서 그만, 벌러덩 행동으로 옮기고 말았다. 


띠리링!

나를 감싸던 빛이 사라질 때 즈음에 나를 깨운 것은 니콜의 문자였다. 

유하, 오늘도 우리 집에 와서 저녁 먹을 거지?

그 문자를 보니 갑자기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나, 많이 힘들었나 봐. 아무리 남들이 인정해 주는 일을 하고, 돈을 충분하게 받는다고 해도 그게 마음을 채워주지는 않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라오스에서 니콜을 만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물론 행복한 삶이 좋은 친구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곁에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뒀을 때 마음을 채우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되니까.




"싸비이디(안녕하세요)!"

나는 멀리 있는 식당 직원에게 목소리로만 인사하며 눈으로는 어디에 앉을지를 생각했다. 이 식당은 페이스북 '비건 페이지'를 보다가 집 근처에 비건 식당이 새로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라오스는 태국처럼 불교문화가 주류기 때문에 '째(채식)'라고 적혀 있는 식당이 꽤나 많았지만 집에서 걸어갈만한 거리에는 이 식당이 유일했기에 신이 났다. 룰루룰루 신나게 메뉴를 보러 카운터 쪽으로 가며 식당 직원을 봤는데 라오스 사람이 아니었다. 통통 튀는 오렌지색 머리칼에 주근깨가 박힌 얼굴을 갖고 있는 서양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편견 없이(?) 라오스어로 보이지 않는 메뉴의 행방에 대해 물어봤다. 

"나 사실 라오스어를 그렇게 잘하지는 못해."

나는 이 식당의 단골손님이 되어 식당 주인과 친해져서 라오스어 연습을 할 전략이었기 때문에 조금 아쉽긴 했지만, 영어를 연습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기에 나는 계획대로 주인장과 수다를 떨며 친해졌다. 


"사실 우리 매주 금요일마다 사람들 모아서 저녁을 먹으면서 파티하는데 너도 올래?"

허걱,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해외에서 외국인 친구랑 같이 요리도 하고 여행도 가는 삶. 정말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우리는 꽤 자주 니콜의 차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맨 처음에는 니콜이 나에게 제로 웨이스트 가게와 아시아 마켓을 알려주겠다고 해서 같이 쇼핑을 했고, 두 번째는 니콜의 강아지인 희망이와 좋은 공원에 가서 수다를 떨기도 했다. 니콜이 없었다면 나는 이 더운 날씨를 뚫고 밖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

"나도 혼자 왔을 때 사람들이 정말 많이 도와줬거든! 그래서 나도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어." 

받은 것을 돌려줄 수 있는 사람과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경험은 내가 내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게 도와준다. '그 친구에게 무언가를 준 사람은 누구일까?' 상상하다 보면 나와 가까이 있지 않은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어쩌면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가닿아서 인류애가 자동으로 충전된다. 니콜의 저녁 파티에 가다 보니 그녀의 친구들이 내 친구들이 되어 있다. 역시 내 예상대로 그들은 나를 가득 채워줬다.


니콜, 에이미, 리나 그리고 나는 가끔 '걸스 데이(Gir's day)나 걸스 나잇(Gir's night)'을 보냈다. 꺄르륵 대며 보드게임을 하기도 하고, 옹기종기 모여서 스페인어를 해석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가사 부분을 나누기도 하고며 한층 더 가까워졌다. 노래를 부르라며 기꺼이 내준 에이미 마이크 모양으로 한 손을 니콜이 핥고 역겹다며 장난치는 모습, 비올때 내가 니콜 뒤에 숨어 비를 피하고 에이미가 내 뒤에 숨어 비를 피하다가 다같이 풀(Pool)장에 풍덩 뛰어가는 장면, 서로가 서로를 공주처럼 취급해주는 몸짓까지 친구들과 함께하는 순간순간이 소중했다.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에는 이런 연결감 있는 친구들을 사귀지 못했기에 내 삶이 팍팍하고 서글펐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호주에서는 이런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던 걸까? 깊이 생각해보니 내가 라오스에서 이런 친구들을 만들게 된 것은 정말 운이 좋았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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