ㄹ라오스에서 만난 언니(2)
나는 주는 것에 대해 조금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내 것을 나누면 꼭 내가 준 사람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돌아온다'는 엄마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고 나눔을 실천했다. 물론 엄마가 한 말처럼 무언가를 나누다 보면 나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보긴 했지만, 그게 정말 내가 나눴기 때문에 온 행운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두 눈으로 목격한 것 중에 주로 기억나는 것은 노력도 하지 않는 아이가 내가 준 것만 쏙 빼가 얄밉게 이득을 취하는 장면이었다. 어쩌면 나는 '내 것을 지키는 방법'보다 '남에게 주는 것'을 먼저 배웠기에 내가 필요한 것까지 남에게 줘버려 더욱 그렇게 느낀 것일 지도 모른다.
그런 과정을 겪다 보니 남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것 자체에 인색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럼에도 주었을 때 주는 기쁨보다는 내가 필요한 것을 지켜냈다는 뿌듯함이 더 커서 그런 팍팍한 사람으로 남아있는 것에 불만을 느끼지 않으며 살아갔다. 그러다 라오스에서 니콜을 만나, 같이 지내다 보니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녀는 주고 주고 또 줘도 줄 것이 또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그때 즈음 나는 양육자에게서도 받지 못했던,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무엇인지 그녀에게서 서서히 배우기 시작했다.
이건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가끔 그녀의 연락을 씹었다(?). 일을 하다 집에 와서 널브러져 있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아무리 다정한 말투로 밥 먹으러 자기 집에 오라고 쓰어진 문자도 무시해 버린다. 심지어는 그녀에게 오늘 꼭 간다고 해놓고선 답장을 안 할 때도 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내팽기친 후 에너지가 충전되었다 싶을 때, 아주 뻔뻔하게 문자에 답을 한다.
앗, 미안해. 오늘 일이 늦게 끝나서.. 지금 가면 조금 늦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
혹은
오늘은 아쉽게 못 갈 것 같은데.. 다음에 가도 될까?
이런 식이다. 이렇게 문자를 보낼 때는 늘 스스로 양심에 찔려 조마조마하다. 그러며 니콜에게 답장이 올 때까지 혼자 부정적인 생각은 다 해버린다. 혹시라도 니콜이 나를 싫어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아잇, 어쩔 수 없지. 나라도 그 친구의 저녁식사까지 다 준비했는데 친구가 뒤늦게 약속을 파투내면 기분이 별로일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하며 결국은 나 자신을 별로인 친구로 정의 내리려고 할 즈음에 니콜에게 답이 온다.
걱정하지 마. 오늘 정말 맛있는 음식을 해서 너도 왔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아쉽다..! 오늘은 푹 쉬고 다음 주에는 꼭 만나자:)
그녀는 내가 어떤 의도로 행동을 하든지 결과가 어떻든지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약속에 늦어도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일을 하다가 나를 반겨주었고, 내가 어떤 일을 시작하던지 다 응원해 주었다. 나는 그게 참 낯설었다. 물론 우리 엄마는 항상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었지만 어쩔 때는 그 사랑이 조건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다.
"엄마는 약속 시간보다 10분 넘게 늦게 오는 사람들을 이해하지를 못하겠어. 그래서 가끔씩 그냥 10분이 지나면 그냥 다시 집에 온 적도 있다니까?"
"거짓말은 아무튼 정말 나쁜 거야.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정말 싫어."
"시작한 것은 끝을 내야 하지 않겠어? 그걸로 무언가 성과를 낼 거 아니면 시작하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엄마의 말들을 들으며 느낀 것은 이랬다. '사람을 용서하지 말아야 할 때도 있구나.',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하면 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해야 하는구나.' '성과를 낼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은 시간낭비구나.' 등등.
아마 나를 키우던 엄마도 '진정으로' 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몰랐던 게 아닐까? 나는 니콜을 보며 '주는 것'이 무조건 물질적인 게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그녀가 나에게 웃으며 인사를 하면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웃음으로 화답한다. 그렇게 그녀는 나에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지 말지 고민하며 머뭇거릴 때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용기를 준다. 나도 그렇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마음에 가득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것들은 사람들에게 아무리 많이 줘도 닳지 않으니까. 그렇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확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