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교사는 지껄인다. 좋은 교사는 잘 가르친다. 훌륭한 교사는 스스로 모범을 보인다하지만 위대한 교사는 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 앨프리드 화이트헤드-
이 말에 감명을 받은 나는 임용고시 면접에서 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붙이는 교사가 되겠다고 자신감 넘치게 말했다. 면접관이 웃으며 만약에 불이 붙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다시 물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정으로 불을 붙이겠다고 대답했다. 당돌한 수험생의 패기에 면접관들이 웃었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면접관들이 웃어주니 기분은 좋았다.
자신의 꿈을 그려보는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5년 후, 10년 후, 20년 후의 자기 모습을 예상하고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보도록 했다. 많은 아이들이 나름 진지하게 고민을 하며 자신의 미래 청사진을 그려갔다. 하지만, 전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아이도 있었다. 하고 싶은 게 없는 데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다시 한번 아이를 일으켜 독려해보았다.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차근차근히 생각해보라고. 그렇지만 결국 그 아이는 자신이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하기 싫다고 포기해버렸다. 옆에서 내가 하는 말은 전혀 힘이 되지 않았다. 모든 걸 집어 삼켜버리는 무력감에 나까지도 잡아 먹혀버렸다.
임용고시 면접에서 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실제로 그런 사례를 마주치니 내가 했던 말들이 미숙함의 표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든 꽃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는 것처럼 지쳐버린 사람은 꿈을 꿀 용기를 잃어버린다. 현실에 지쳐 자빠진 사람에게 꿈을 꾸라고, 더 노력하라고 채찍질을 할 수 없다. 그때 필요한 건 동기부여가 아니라 휴식이고 여유이다.
지금 다시 나에게 불이 붙지 않는 학생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질문을 한다면, 옆에서 기다리겠다고 대답하겠다.
어느 날,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아 늘 같이 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집 앞 가로등 밑에서 담배를 태웠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먼저 가겠다고 말했지만, 친구는 그냥 헤어지면 섭섭하니 한 대를 태울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할 수 없이 기다리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새벽 밤하늘에서 희미하게 보일 듯 말 듯한 별을 바라보려 애쓰고 있었다.
"아, 얼른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친구는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며, 연기를 뱉었지만, 어쩐지 연기는 위로 뻗지 못하고 우리 주변으로 가라앉았다. 희미한 별빛에, 아니 선명한 가로등 불빛에 담배 연기가 아스라이 닿을 듯 말 듯 우리의 꿈들에 겹쳐 희미하게 일렁였다.
현실에 맞춰 초라해진 꿈을 바라보면 서글픈 마음이 든다. 예전에 있던 반짝임은 사라져 버리고, 초조함과 불안함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때, 친구에게 힘들면 좀만 쉬어도 된다고 말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