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소중했던 것들.
-최종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토록 바랐던 그 글자가 맞았다. 지금껏 묵혀두었던 기쁨이 단번에 몰려왔다! 나에게 할당된 기쁨의 몫을 다 사용했을 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어떻게 됐어? 아들”하고 물었다.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당연하다는 듯이 “됐지. 뭐~”라고 대답했다.
신기하게도 그토록 바라던 일이 정말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어릴 때에는 어렴풋이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대학교에 들어가서 임용시험을 준비하면서 나의 간절함은 구체화되었다. 그 간절함이 딱딱해질수록 나는 열심히 공부에 매달렸다. 가끔은 지쳐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노력을 잠시도 멈춘 적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고된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고, 나의 간절함은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렇지만, 백조가 물밑의 발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주변에 나의 간절함을 과시하지 않았다. 그저 농담처럼 운이 좋았다는 식으로 합격의 지분을 노력이나 간절함 같은 구구절절한 놈보다는 행운이라는 깔쌈한 놈에게 돌렸다.
처음으로 학교에 선생님으로서 들어갔을 때, 그 이질감을 기억한다. 정장 차림으로 쭈뼛쭈뼛 행정실에 찾아가 이 학교로 발령받은 신규 교사라고 밝히자 한 분이 나를 교감 선생님께 안내해 주었다. 그때 교무실에서, 아니 그 학교에서 정장을 입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교감 선생님은 나를 환영해 주면서 숙달된 솜씨로 학교의 교사로 받아들이기 위한 작업들을 진행했다. 생년월일, 담당 교과, 군필 여부 등을 자신 있게 적었고, 담당 업무를 적는 칸에서 신중하게 고민했지만 사실 나의 업무는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었다. 남자 신규 교사는 학생부 직행이었다. 그렇게 첫해는 정신없이 흘러갔고, 그다음 해도, 그다음 해도, 계속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 속에서 나는 선생님이 되었다. 어릴 때의 내가, 대학생이던 내가, 수험생이던 내가 그토록 바랐던.
예전의 내가 바란 선생님이란 꿈은 알록달록한 어떤 것이었다. 디테일한 부분은 고려하지 않고 화려함과 반짝임으로 가득한 모습이었다. 10분 내외로 하이라이트만 편집된 야구 경기 같은 느낌이랄까. 그 화려함과 반짝임은 긴 수험 생활 속에서 나를 계속 일으키는 힘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그토록 특별했던 바람은 일상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선생님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예전의 내가 바라던 그 특별함, 화려함과 반짝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것들은 아주 가끔 홈런을 치는 타자처럼 하이라이트에 잠깐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선생님으로 살아가는 데에는 하이라이트에는 편집되어서 나오지 않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런 것들을 미뤄두더라도 선생님으로 살아가는 나날들은 예전의 내가 갈망하던 특별함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바라는 꿈, 직업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폰을 처음 살 때를 기억한다. 구매 전부터 관련된 블로그, 유튜브, 카페 등등의 인터넷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사용자들의 이야기, 구매 후기 등등을 들으며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박스를 분해하고 내 아이폰을 처음으로 손에 들게 되는 그 감격이란. 영롱한 그 자태, 화려한 빛이 그것을 감싸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빛은 점점 희미해진다. 처음 차를 구입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운전을 시작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갈망하는 특별함은 소유하게 되는 순간부터 일상화 작업을 거쳐 평범하고 당연한 일이 되기 마련이다. 누구에게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다만 그 특별함을 기억하는, 간직하는 유별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너무나 당연해진 그 무언가가 예전의 내가 그토록 소망하던 일이 아니었는지,
가끔은 일상에 찌들어 빛바랜 것들을 들여다보자.
"늘 함께 있어 소중한 걸 몰랐던 거죠" (hot-빛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