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임하는 마음가짐에 대하여.
2017년 1월 17일. 나는 망했다.
그날은 2017학년도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정확히는 2차 시험의 첫 번째 날이었다. 시험을 마치고 고사장을 빠져나올 때 분명히 직감했다. 아, 망했다.
그날은 길고 긴 수험 생활이 끝나기 전날이었다. 중등교사 임용시험은 2차에 걸쳐 치러진다. 1차 시험은 모두에게 익숙한 필기시험이다. 1차 시험은 교육학, 교과내용학, 교과교육학에서 문제가 출제된다. 교육학 논술 시험은 교육 이론에 대해서 출제되며 임용시험을 응시하는 모든 수험생들이 치르는 과목이다. 교과내용학, 교과교육학은 본인의 전공 교과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서 문제가 출제되며, 당연하게도 교과별로 시험 문제가 다르게 제시된다. 내가 응시했던 도덕·윤리 교과에서는 가르치는 내용(교과내용학), 예를 들면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공리주의 등에 대해 시험 문제가 나온다. 그리고 도덕·윤리 교과를 가르치는 방법(교과교육학)에 대해서 시험 문제가 나온다.
1년에 단 한 번밖에 없는 임용을 준비하면서,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1차 시험에 투자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1차 시험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2차 시험은 만날 수 없는 존재이니 당연한 일이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그 좁은 문을 통과하고 2차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2차 시험은 수업 능력 평가와 심층면접 시험이다. 수업능력 평가 시험은 전공 교과의 수업을 직접 시연해보는 방식이고, 심층면접 시험은 교원으로서의 적성, 교직관, 인격 및 소양 등에 대해 문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내가 망했음을 직감한 그날은 수업능력 평가 날이었다. 수업 시연을 하기 전, 대기실에서 나는 우황청심환을 한숨에 들이 삼키며 마음 한편에 긴장과 두려움도 함께 삼켜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억지로 욱여넣었다. 내 차례가 되어 구상실로 이동했고, 수업 시연 주제를 받았을 때 그 자신감은 쪼그라들어버렸다. 처음 보는 유형의 문제가 출제되어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 당황스러움은 수업 시연에서 도무지 숨겨지지 않았고, 횡설수설하며 그대로 수업시연을 말아먹었다. 나는 참담한 심정으로 고사장을 빠져나왔다. 이런 순간에 비라도 내렸으면 좋으련만, 그 당시에 돌아가는 길은 약간 구름이 있었지만 햇빛은 화창했고, 분주했지만 평화로웠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아름다웠다. 그 속에서 나는 철저한 고독을 느끼며 터덜터덜 걸었다. 모두에게 그렇듯이 개인의 심란한 속 사정을 세상은 알아주지 않았고, 그 심란함을 온몸으로 견디어 내며 걸었다. 외숙모 집에 도착했을 때, 외숙모는 감사하게도 시험에 대해 물어보지 않으셨다. 다만, ‘고생했다’라고 나를 다독여주시며 밥상을 차려주셨다. 내 심정과는 전혀 무관하게 밥이 참 맛있었다.
그렇게 힘들었지만, 다음날에도 다시 고사장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날은 법정 스님의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라는 책을 가방에 이고 갔다. 대기실에서 법정 스님의 말씀을 읽으며 구겨진 자신감을 반듯이 가다듬었다. 마음의 준비는 되었는데도 내 차례는 오지 않았다. (내 순서는 뒤에서 세 번째 정도였던 것 같다.) 시간이 많이 남아 책을 덮고 그동안의 노력을 되짚어봤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주 6일제 수험생 생활, 밥값 3500원이 아까워 도시락을 싸고 다녔던 기억, 전화 한 통으로 때운 명절, 결혼식에 왜 안 왔냐는 친한 친구의 푸념,,,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소하지만 스스로는 부단히 달려왔던 지난날들을 천천히 떠올려봤다.
실패에 대한 압박감, 다시 1년을 더 해야 한다는 부담감,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실에 대한 미안함들이 나를 괴롭혔지만 결국에는 모든 시험을 마쳤다.
2017년 2월 2일. 나는 또 망했다.
다음 날은 최종 합격자 발표날이었다. 그냥 망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학교 근처 술집에서 같은 처지의 동지들을 모아 한잔하기로 했다. 맨정신으로는 그날 밤을 보낼 수 없었다. 똑같은 신세였던 선배는 내년에도 또 수험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술을 더 시켰고, 아직 시험을 안 본 친구는 여기 있는 사람들 다 합격할 거라며 위로하며 술을 더 시켰다. 이런저런 이유들을 갖다 붙이며 술을 마셨고, 견딜 수 없는 심란함을 달래러 술에 나를 빠뜨렸다. 아주 푹-.
눈을 떠보니, 자취방이었다. 뛰어난 내 귀소본능에 감탄하며 옆을 보니, 친구 녀석이 자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발표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가 눈을 붙였지만, 밀려오는 불안감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억지로 다시 잠을 자고, 일어나도 발표 시간은 약간 남아 있었다. 친구는 옆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일어난 것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말했다.
“일어났나? 이제 좀 있으면 발표할 시간이다.”
아직도 안 가고 남아 있는 친구가 원망스러웠다. 발표 결과가 어떻게 되든 혼자서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왜 안가냐’라는 말은 못 했다. 슬슬 눈치를 주었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 ‘될 대로 되라, 이제 와서 바꿀 수 있는 것도 없다.’ 맘은 그렇게 다잡아 봤지만, 시간이 최대한 천천히 가길 바라며 뭉그적뭉그적 거렸지만 야속하게도 발표 시간이 되어버렸다. 하는 수없이 노트북을 켰고 합격자 발표 사이트로 접속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름과 수험번호를 입력했다.
-최종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토록 바랐던 그 글자가 맞았다. 지금껏 묵혀두었던 기쁨이 단번에 몰려왔다! 나도 모르게 옆에 있는 친구를 퍽퍽 때리며 소리를 질렀다. 방금까지는 그 친구가 자리를 비켜주지 않아 원망스러웠지만, 그런 건 잊어버리고 기쁨을 함께 나눴다. “내가 뭐랬냐 될 거라고 그랬잖아, 축하한다”라는 말을 덧붙여주는 친구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친구는 이제 자리를 비켜주었다. 친구가 떠난 빈 자취방에서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혼자 춤을 췄다. 사실 춤보다는 그냥 몸을 막 흔들어 댔다. 그렇게 나에게 할당된 기쁨의 몫을 다 사용했을 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어떻게 됐어? 아들”하고 물었다.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당연하다는 듯이 “됐지. 뭐~”라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