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기록지 20210203
그녀는 요즘 무언가 감흥하고 즐거운 일이 없었다. 짜증이나 화는 여전히 쉽게 내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음식이 너무 맛있다던가, 굉장히 보고싶은 것, 하고 싶은 일 아름답다 좋다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꽤나 무덤덤하고 무미건조하게 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흠칫 놀라게 된 것이다.
여자는 원래부터 담담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요동치는 감정의 폭풍 속에 휩쓸려 어리석게 살아오던, 충동적인 사람에 가까웠다. 파란만장과 탐험, 존재, 생명 이런것들이 살아있는 것과의 같은 의미를 지니던 시절. 세상은 아름다웠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고 미래의 꿈을 꾸었던 것 같은데 무언가를 이룬 것 없이 재료들만 소진되어 가고있는 상황이다. 안정을 얻은 대신 감흥을 잃었다고 해야할까, 지금의 그녀는. 그저 일상을 살아내면서 그다지 재미없는 이 세상을 이후 노후에 고생없이 편안할 수 있게 지금 준비해놓아야 할텐데 그런 생각들로만 버티고 있는 중이다. 의욕이 없어진다는 것이 이런것인가. 원래 수행하는 입장이 아니고서는 그다지 나이먹어서 좋은 일은 없는듯 하다. 14세 이후로 나이먹는 것이 그렇게 싫더니 선견지명인지…, 그런 일들이 생각보다 좀 빠르게 일어나 버렸다.
어느 날은 오랜만에 아이들을 학교에 다 보내고 그다지 어질러진 것 없는 집에서 딱히 바로 무언가를 해치워야 할 일이 남아있지 않은 시간이 있었다. 멍하니 거실에서 주변을 쓱 둘러보는데 진동도 냄새도 없는 고요함이 그녀를 덮쳐왔다. 무감, 무음, 무향… 해가 점점 뜨거워 지는 바깥의 풍경은 두터운 거실 유리창에 막혀 그녀의 호흡과는 차단되어 이세계와 같이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순간 여자는, 벌렁 거실매트위에 대자로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않았다. 그러가다 금방 몸을 옹송그려 쪼그라진 새우처럼 돌아눕고는 잠이 들고 말았다.
며칠 뒤에는 여자의 얼굴에 온통 두드러기를 덮어썼다. 볼과 눈과 코사이가 근질근질 신호를 보내더니 순식간에 얼굴 전체를 뒤덮어버린 것이다. 하루 이틀 참아보다, 아들의 알러지 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별로 효과가 없었다. 별 다를 것 없는 일상과 마찬가지로 바르던 것 먹던 것이 변한 것이 없는데, 왠지 피부는, 몸은 성이 나서 이리저리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원래도 알러지성 피부를 가지고는 있었지마는, 그래도 얼굴에 이렇게 까지 심한 두드러기를 덮어쓴 것은 몇십년 만이었다. 아마도 중학교때인듯 한데, 그때에는 약 알러지 반응으로 얼굴이 찐빵에 종기가 난 듯 울퉁불퉁 부풀어 올랐었더랬다. 지금은 다행인지 찐빵만큼 부풀어 오르지는 않았지만, 여간 가렵지가 않아서, 조심하다가도 자신도 모르게 긁어대는 통에 안경코 밑부분과 왼쪽뺨은 우둘두둘 붉은 악어가죽같이 우스웠고, 그녀는 거울을 그만 보기로 했다.
최근엔 바깥을 만나는 시간은 이 프렌들리한 코로나의 성격 덕에 최소한으로 줄여 버려서 멍하니 창문 밖으로 너무도 화려하게 황금색으로 빛나는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는게 다였다. 그것도 자꾸하다보니 TV를 보는 건지 사진을 보는 건지 현실감이 없어진 것이, 바깥을 갈구하면서도 나가기 싫은 모순된 마음으로 주변 사물과 자신이 별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물아일체(物我一體)인 것인가. 선사들은 도를 닦아 경지에 이르면 느낀다는 것을, 도(道)에는 닿지도 못하고 무감한 한심함만 가득 하다.
그뿐만이랴. 학교로 아이들을 실어 들고 나를때도 여자는 단지 차안에서 아이를 배웅하고, 열걸음 정도 걸어 아이를 데리고 얼른 다시 차로 데리고 올 뿐이다. 어제는 작은 접촉사고가 있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다주고 오는 길이었는데 어쩐일인지 거의 정차되다시피한 도로에서 누군가 차 뒷부분을 들이 박은 것이다. 분명 전화를 보던 딴짓을 하다가 박았겠지… 싶어 룸미러로 슬쩍보니 뒷차 운전자는 내릴 생각이 전혀 없어보인다. …내가 뭐라하지 않으면 그냥 모른척하겠다는 거지. 사태파악과 정의 심판을 위해 직접 내려야 할 순간이 왔는데 순간, 그녀는 너무나 환한 바깥 세상이 당황스럽게 느껴져 차문을 열기가 주저됐다. 주섬주섬 마스크를 챙기면서도 걍 모른척 지나갈까…내리기가 싫고 상황이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좀 손해보는 기분이 들어 -아마 뒷차 운전사가 먼저 내려서 미안하다 했으면 진짜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차문을 열고 억지로 내려서는데 너무나 생생한 바람이 온몸에 와 닿아서 놀라버렸다. 결국 사고는 별게 아니었고, 대신 그녀를 보고 차를 빼라며 큰소리치는 운전사와 수십대의!! 오토바이, 그리고 안그래도 막히는데 아침 정체에 한몫을 더한 동양여자를 향해 뿜어대는 다른 차들의 클랙션 소리에 둘러 싸여 순간 휘청 정신이 아득해졌다. 결국 도망치듯 그냥 차로 돌아왔는데 왠지모를 수치심에 벌렁거리는 마음을 안고 천천히 숨을 내쉬려고 애를 썼다. 히키코모리라고… 일본에서 시작된 방구석폐인을 일컫는 말이 지금, 여기에 이런식으로 또하나 탄생되는게 아닐까 싶은 순간이였다.
여자는 모 프로에 출연한 정신과 의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우울증은 개인적인 자체로 보면 지극히 안정되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꾸 더 유지하려고 하게 된다’고… 나가지 않고, 만나지않고 바꾸지 않고 무감한 지금의 그녀가 사실은 그런 종류의 안정감을 유지하려 하는 거라고 온 몸의 세포들이 고함지르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몇십년 만에 겪어보는 얼굴 두드러기의 성가신 괴로움은 변화를 바라는 살라고 손발이라도 휘저어보라는 자기방어 일지도 모르겠다. 이 얼굴 때문에 더 나가기 싫다는건 논외로 하고.
새벽의 싸아한 공기가 정신을 깨우던 학교의 운동장이 생각이 났다. 여자는 불과 일년전까지 아이들을 내려주고 난 뒤 바로 아침 햇살과 이슬이 뒤섞인 근처의 운동장으로 가서 온몸을 쿵덕거리며 트랙을 돌았었다. 몇걸음 뛰지 않아도 금새 심장이 터질듯하고 폐가 찢어질 듯 헐떡대던 그 살아있는 느낌이 좋았다. 그리 멀지 않은 시간인데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옛일을 떠올리듯 하는 것에 그녀는 살짝 놀라움을 느꼈다. 자신의 몸이 요구하는 생존의 발버둥을 이제라도 좀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이러다가는 정말 방밖으로는 한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퍼드러진 이끼 같은 존재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다시한번 이른 아침부터 내리앉던 빛살이 눈부시던 운동장을 떠올렸다. 그 햇빛속으로 걸어나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그 아래에서는 희끄레하게 녹아붙은 이끼가 아니라 조금은 비실거려도 새싹이 될지도 모른다고 격려를 던져보았다. 그래, 오늘 아침엔 꼭 운동장을 걸어야겠다. 그러다 보면 잃어버린 감흥도 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작은 몸짓으로 일어나 처박아놓았던 회색 운동화를 끄집어내려 신발장을 뒤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