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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 May 15. 2020

여름산의 축제  (1)

생활기록지 20200219

-1-

 산은 푸르렀고 공기는 상쾌하면서도 무더웠다. 온 산이 흔들릴 만큼 매미가 울어대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 산길을 올라가면서 아이들은 씩씩대기 시작했다. 짙은, 푸르다 못해 거무스레한 여름산의 호흡을 건조한 평원에서 자란 아이들이 겪어 봤을 리가 없었다. 보이지도 않는 벌레들과 온갖 나무들이 뿜어내는 생명의 신호.. 포자들이 짙은 향으로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유달리 여린 피부를 가진 큰아이의 목덜미는 이미 벌겋게 부풀어 올라있었다. 저대로 두면 곧 버섯들이 자라 날지도 모르겠네..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찰싹! 잘은 가시들로 뒤덮힌 넝쿨 가지가 튀어올라 아이의 뺨을 때렸다. 결국 참다 못한 아이의 울음이 폭발했다.

 “정말 싫어. 간지럽고 따갑고. 벌레는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진짜!!! ”

 울먹이며 투덜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슬쩍 웃음이 삐져 나왔다. 그래도 처음 찾아왔을 때 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그때는 발도 잘 못 떼더니.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뿌옇게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산길은 미끄러웠고 질척였다. 장화를 준비하지 못한 아이들의 신발은 구멍이 뚫려있는 고무 단화였는데 한걸음씩 뗄 때마다 진흙덩어리들이 신발 안으로,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어왔을 것이다. 찌걱찌걱 걸음을 뗄 때마다 듣는 것 만으로도 찝찝함을 느끼게 하는 소리가 신경에 거슬렸다. 삼우제를 올리러 가는 어른들의 착찹한 마음 따윈 아랑곳없이, 아이들은 생전 처음 겪어보는 미끌거리고 찐득한 찝찝함에 또 산이 주는 무서움에 투덜대다가 결국 주저앉고 말았었다.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세상 서럽게 울어 댔었는데 …  지금은 울상가득하긴 해도 앞으로 걸어 나아가고 있으니, 기특하다.



 지팡이 겸 삼은 막대를 집어 들어 아이들 앞을 다듬어 주었다. 걸을 발길을 꾹꾹 짚어 주며 아이들을 재촉했다. 제수며 낫이며 챙겨 든 두 어른 남자는 이미 저만치 나아가 있었고 몇 번 와본 적이 있는 큰집 아이들도 군소리 없이 씩씩하게 앞장서 있었다. 괜스레 울고 있는 내 아이들이 민망해졌다.

“어서 가자. 여기로 딛고 가. 너보다 어린 Y도 잘 올라 가잖아.”

 그 말을 들은 것 인 냥 앞에 있던 Y는 큰소리로   “아빠, 내가 낫으로 풀들 뽑아도 돼? 할아버지 산소 주위에 있는 거 내가 할 수 있어” 라고 말을 붙였다.   Y는 밝고 건강했으며 따뜻한 소년이었다. 그런 아이의 기특한 마음에 나는 되려 내 아이들에게 쏘아붙이고 말았다.

“ Y 봐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무언가 생각하고 하려고 하고.. 얼마나 기특하니? 너희도 그만 좀 투덜대고 얼른 올라가!   ”

 입으로 말을 뱉으며 아차 싶다. 어릴 적 엄마에게 듣기 싫은 1순위 말 중에 하나였는데. 나중에는 결국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신공을 발휘하면서 엄마와의 대화가 점점 건성이 되어갔고 진심에서 멀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스스로 모자 지간 관계를 벌리고 있구나! 혼자서 자책을 해도 뱉은 말은 어쩔 수 없다. 어릴 때는 어째 주변 엄마 친구 아들딸들은 하나같이 잘나고 똑똑한가 싶었는데,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다 보니 또 내 아이 아닌 남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야무지고 똑똑하고 출중한 지 모르겠다. 엄마 욕심이 큰 건지, 내 아이들이 너무너무 평범하다는 걸 인정 못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너에게서 물려받은 네 단점은 어쩌라고 … 입 좀 조심해.. 아이들과 멀어질 지도 몰라.. 순간 또 빠르게 생각에 빠져든 사이 어느 새 나란히 솟아있는 봉분에 도착했다. 산은 그 닥 높지 않았고, 산소도 야트막한 중턱에 자리한 터라 그나마 아이들의 고행도 짧게 끝이 났다. 다행이다.



 아버님의 부고를 전해 받은 건, 아직 깊은 단잠에 빠져있던 새벽 6시 무렵이었다. 어머님의 전화.. 정신 못 차리고 전화를 받았지만 갑자기 찬물이 끼얹어 지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빨리 들어와라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얼른 들어와 … 네? 어머니.. 네??

 그때, 남편은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일단 일은 맡겨두고라도 아버님 옆에서 병간호도 하고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했다. “한달 정도라도 옆에 같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엄마 혼자 병원 모시고 다니는 것도 힘들고..” 그 결정을 했을 때에도 크게 걱정할 상황은 전혀 예상 못했었다. ‘오빠 아버님 돌아가셨대요. 바로 00병원 장례식장으로 가세요.’ 메시지를 남겼다. 분명 음악을 듣고 한국에서 할 일들을 생각하고 있었겠지..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아무것도 모르고 내려서 만나는 소식이, 부고라니.. 갑자기 마음이 시큰해져 왔다. 가엾어라. 반나절의 시간으로 이렇게 엇갈리다니.. 울컥 억센 울음이 밖으로 터져 나왔다. 하루만 더 빨랐으면…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시지.

 아이들은 꺽꺽거리는 엄마 옆에 매달려 놀란 눈으로 함께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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