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았던 나의 그 사람
처음부터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일 생각은 아니었다.
그리고 한다더라도 그렇게 일찍 할 생각은 또 전혀 없었다.
하지만, 23살에 만난 6살 차이의 '그'를 3년 동안 만나면서 너무 착해서, 사람하나 보고 결혼이라는 걸 했다.
아들만 셋인 집의 둘째 며느리.
결혼이라는 걸 하기로 마음먹고 나서 혼자 찾아뵌 '그'의 부모님.
큰아들과 막내아들이 이미 마음에 들지 않는 연상의 그녀들과 결혼을 했던지라, 당신들의 딸 같은 둘째 아들보다 여섯 살이나 어리고, 공부에 한이 서린 당신들의 기준에 비해 가방끈도 길고 키도 큰.. 당신들 조건에 쏙 드는 둘째 며느리.
게다가 인사드리러 왔다며 둘째 아들이 출근한 토요일에 혼자서 싹싹하게도 왔다.
너무 마음에 든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도 좋은 분들인 줄 알았지 ㅋㅋㅋㅋ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은 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을 먼저 살아오신 ‘인생선배님’인 부모님의 말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물론 우리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이었다는 건 아니다.
- 아 정정, 아빠는 반대하셨지. 끝까지 ㅋㅋ
엄마가 후에 그러셨다. 나는 석이만 보고 결혼시킨 거라고.
그 집에서 인성을 제대로 갖춘 건 석이밖에 없어 보였는데 석이만 믿고 결혼시킨 거라며.
엄마의 통찰력. 역시 대단한 존경스러운 여성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26살의 나이에 32살 석이와 결혼을 했지.
식당에서 조력자 엄마의 부름에 아빠한테 첫인사를 시킨 날.
엄마의 귓가에 아빠가 속삭이던 “쟤. 가라 그래.. ” 잊을 수 없는 그 한마디.
결혼식장에서도 신부 손을 안 놔줘서 한참을 버진로드에 서있게 한 우리 아빠.
신부어머니가 눈물을 흘리기도 전에, 먼저 선방 치고 눈물을 너무 흘려서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던 엄마의 말.
그렇게 엄마의 든든한 후원을 받아서 부부의 연을 맺고, 그분들과도 부모자식 간의 연을 새로 시작했지.
결혼하고 시어머니의 첫 생신상 겸, 집들이 겸 우리 집으로 초대를 했는데.. 집으로 가시는 길 배웅한다고 끼었던 형님의 팔짱을 풀게 했던 그 한마디.
“예쁜 며느리는 뭘 해도 예뻐 보이는구나. 나는 집들이 때 처음부터 끝까지 음식타박 들었는데. “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 그 한마디.
그래서 “장가 못 갈 줄 알았던 둘째 아들이 결혼을 했으니 그런 거죠~” 받아쳤던 기억.
그만큼의 시샘을 받았던 집안의 막내어른이자 둘째 며느리.
그런데. 그 둘째 아들이 당신들보다 먼저 가고 나니 민낯이 보이더라.
내 남편이자 당신들의 둘째 아들이 어쩌면 그렇게 감쪽같이 중간역할을 잘했었는지 정말 몰랐다.
그렇게 예뻐하던 둘째 며느리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줄이야. 어쩜 그렇게 이중적일 수가 있을까.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무조건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가족이 된 이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게 소름이 끼치더라.
당신들이 자식을 앞세운 것에 대해서는 너무 안타깝고 슬픈 일이야.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 없는 일이지.
그런데 당신 며느리도 남편을 잃은 여자고, 당신 손주들은 아빠를 잃었어.
어른이라면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심지어 그 계기로 부모자식 간의 연을 먼저 야멸차게 끊어내고 등 돌렸던 막내아들 가족이랑 다시 연을 잇게 됐잖아.
그런데 우리를 그렇게 손님 접대하면 안 되는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