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적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화를 내는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첫째만 키울 때는 나름 조절이 되었고 그 아이만을 바라보며 아이의 생활 패턴에 나를 맞추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이 버겁기는 했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첫째가 두 돌이 되기 전, 말도 제대로 못 할 때 둘째가 태어났다. 더 이상 한 아이만을 바라보며 아이들에게 내 생활 패턴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아이는 두 명이 되었을 뿐인데 쉴 틈 없이 제공되어야 하는 돌봄에 나의 신경은 몇 배는 더 날카로워졌다. 그렇게 피로가 누적되어 가던 때에 첫째가 배변훈련을 시작했다. 새벽에 실수를 하면서도 기저귀를 입고 자지 않으려는 아이가 미웠다. 잠든 사이에 몰래 채우면 귀신같이 알고 벗어던지곤 했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이불이 젖었고 그 시간이 너무 힘들어서 화를 많이 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미안하고 가슴 아픈 일이다. 화를 내고 난 다음에 기분이라도 풀렸다면, 오히려 그게 다행이었을까?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을 마주한 날에는 우울함까지 겹쳐져 견딜 수가 없었다. 이렇게 무능력하고 몹쓸 엄마인 나를 견뎌 줄 수가 없었다.
화를 내지 않는, 어느 순간에나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더 이상은 스스로 '나는 왜 이럴까'라는 질문을 하기 싫었다. 과거에 돌봄을 받지 못한 것이 뭐 어쨌단 말인가.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을 키우기만 하는 것으로는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무언가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한없이 부족하기만 한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싫어서 다른 일에 더욱 몰두하려고 했다. 내가 왜 그러는지, 나를 살펴보는 일이 너무 힘겨웠기 때문에 외면했다. 살기 위해서. 외면하는 것은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만 했다. 그렇게 되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감정은 들쑥날쑥 제 멋대로 널을 뛰었다. 하, 왜 나만 사는 것이 이렇게 힘든 걸까. 화를 내지 않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들은 화를 내는 자신의 모습이 아무렇지 않을까? 그들도 모두 나처럼 불행하다는 마음을 품고 아닌 척 살아가고 있을까? 삶의 모든 것이 수수께끼였다.
"무엇을 할 때 기쁘세요?"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언제인가요?"
이런 질문들 앞에 막막해하는 나를 보았다. 분명 기쁜 상황, 행복한 순간이 있었을 텐데 생각이 나질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상처받아서 얼룩덜룩해진 기억이 있나요? 언제였나요?"
슬픔에 대한 질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란 사람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모든 사람은 방어기제라는 일종의 보호막을 갖고 있다고 한다. 어떤 위협이나 불안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게 된다고 한다. 나에게도 여러 방어기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어쩌면 감정을 차단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화'라는 감정에 대해 부정하는 것이 모든 감정을 무디게 만드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일지도.
사람은 한 가지 감정만을 차단할 수는 없다고 한다. 어떤 하나의 감정이 고통스러울 때는 모든 감정을 무감각하게 해서 고통스러운 감정도 덜 느끼게 한다나.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모든 감정에 무감각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현명하게 화를 내는 사람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노를 마주해야 하고, 분노 속에 숨겨진 나의 의도를 들어주고 안아줘야만 한다. 그것이 여전히 어렵고 두렵고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적당히 잘 포장하고 괜찮은 척, 근사한 사람인 척, 살아갈 수도 있지만. 그런 내 모습조차도 편안하게 받아들여 줄 수 있는... 내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괜찮은 척 외면했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기를 쓰고 노력했던 것은 살기 위한 노력이었다. 짠했던 그날의 나를, 오늘의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