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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봄 Aug 12. 2024

 나의 소울 푸드, 엄마 손맛

한 번씩 김밥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 어릴 때 먹던 김밥이 그리울 때가 있다. 부담없이 먹기 좋은 참 흔한 음식인데 최근 김밥집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김밥 한 줄에 5천원을 전후하다니! 게다가 물가도 물가지만 맛도 영 성에 차질 않았다. 김밥에 당연히 있어야 할 것 같은 시금치를 보기도 어렵다. 오이나 어쩌다 부추나물로 대체되고 우엉은 짭조름한 조림이 아니라 시큼한 초절임이다. 재료에 따라 가격도 최하 4,000 원 웬만하면 5,500 안팎. 백화점에선 한 줄에 7,000원이 훌쩍 넘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재료를 사서 직접 싸 먹기로 했다. 그런데 장을 보다가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김밥용 김 1 봉지(10매) 3,500 원

단무지 1통 -2,000 원 (마트 PB상품)

시금치 1 봉지- 5,500 원 (폭염 탓에 극소량이라 들었다 놨다를 반복)

맛살 1+1- 7,000 원

김밥어묵-2,000원

김밥용 햄 1+1 -5,000 원

계란 20알- 7,000 원   

 총 32,000원

우리 3 식구는 5줄이면 충분한데.. 계산 후 후회가 살짝 올라왔다. 그래도 이왕 장을 봤으니


내가 싼 김밥의 맛을 보려고 한 조각 입에 넣는 순간

"그래! 이 맛이야!"

나도 모르게 오래전 엄마가 싸준 김밥, 우리 엄마의 김밥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엄마가 하던 김밥은 꼬들꼬들한 밥이 아니었다. 우리가 소풍 가는 날, 층층이 시어른을 모시고 살면서 김밥을 같이 맛보고 나눠야 했기에 어쩌면 어르신들 입에 꼬들한 밥이 안 맞았는지, 아니면 김발로 꾹꾹 누르는 동안 시금치나물의 간이 배어든 탓인지 여하튼 김밥 자체가 조금은 질었다고 할까? 내가 만든 김밥이 딱 그 느낌이었다.

파는 김밥에 비해 왜 색감이 컬러풀하고 화려하지 않나 했더니, 식구들이 좋아하지 않는 당근을 뺏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맛은 딱 집밥 김밥!

 

초등학교 5, 6학년 무렵, 소풍을 갔을 때의 일이다.

같은 반 남자아이가 혼자 구석에 가서 김밥을 한 줄 통째로 들고 입으로 베어 먹는 걸 봤다.

그 모습 위로 어른들한테 들었던 말이 스쳤다.


'가들 엄마가 집을 나간 지 한참 됐다카데. 읍내 식당에서 일한다 카든데?'


어린 마음에 놀라며 들었던 기억이 있다.

'무슨 일로 엄마가 집을 나갔을까. 그럼 그 친구랑 동생은? 왜 나갔을까? 아빠가 때렸나? 그럼 언제 다시 와? 엄마가 없으면 어떡해?'


그리고  혼자 썰어오지도 않은 그 통김밥을 베어 무는 친구를 보며 어린 마음에 또 이런 생각을 했다.


'김밥은 누가 싸준 걸까? 아빠가? 김밥 안에 든 게 왜 나랑 많이 다르지? 왜 썰어서 담아 오지 않았을까? 김밥이 김밥 같지 않아서 혹시 창피한가? 그래서 저렇게 먹나? 나도 엄마가 없다면 김밥을 제대로 먹을 없는 걸까?'


어쩌면  통김밥으로 베어 먹는 게 좋아서였을 수도 있다. 엄마가 김밥을 챙겨줬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당시 그 모습이 엄마의 부재는 곧 김밥의 변화로 뇌리에 남았다. 엄마가 있어야 제대로 된 김밥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변함없는 엄마의 김밥 맛은 내게 '안정감의 확인'이 되곤 했다.


우리 엄마는 알까? 생각도 못하실 거다.

내가 김밥의 맛을 음미하며 마음이 편안해지고 평안을, 안정감을 느낀다는 걸.


김밥에 대한 나의 뼛속 깊은 선입견은 이후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도 김밥에 진심이게 했다.

유치원 소풍 갈 때 나는 반드시, 미리 김밥 재료를 빠짐없이 사서 김밥을 쌌다. 그런데!

아이가 김밥을 거의 안 먹고 가져왔다. 온통 싫은 야치 투성이어서.  아이는 그냥 볶음밥을 싸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절대 그럴 수가 없었다. 김밥을 안 싸가는 건??


그렇게 내 고집대로 싸준 김밥은 매번 돌아왔고, 아이는 방울토마토 같은 간식만 좀 먹고 왔다.

유치원 내내 시행착오를 거쳐 초등학교 때는 늘 김치, 스팸 볶음밥을 싸줬다. 아이는 김밥이 아닌 것에 전혀

신경 쓰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아이들도 다양하게 싸 온다고 했다. 속으로 나는 그런 엄마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못내 김치볶음밥으로 도시락을 준비해 줬는데, 나와 달리 아이는 아주 만족스럽다고 했다. 한 번은 날씨가 좀 쌀쌀했는데 그렇다고 거추장스럽게 보온도시락을 주기엔 애매한 날씨였다. 나는 김치볶음밥 도시락 밑에 핫팩을 깔고 보자기로 싸서 보냈는데, 다른 아이들이 차가운 김밥 먹을 때 자기는 따뜻한 볶음밥을 먹어서 좋았다고 했다.  물론 도시락을 안 먹거나 남기는 일이 없었다.


내게 엄마의 밥상은 보글보글 뚝배기 된장찌개와 조기구이, 멸치내음 가득한 시래기 된장국, 그리고 김밥이다. 내 아이에게 엄마의 밥상을 물으니 '돼지고기 김치찜', '햄김치볶음밥'이라고 한다.

내 아이에게 엄마의 음식을 물었을 때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음식이 있어서 반갑고 좋기는 한데 두 가지 음식 모두 친정 엄마의 김장김치, 묵은지가 있기에 가능한 음식이다.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우리 엄마. 엄마가 더 이상 김장김치를 담지 못하면 당장 내 딸이 그 음식 맛을 더는 보기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내 딸의 소울 푸드는 단지 엄마의 손맛만으로는 안된다. 할머니의 김치와 엄마의 손맛이 있어야 가능할 것 같다.

 

그나저나 나는 오십이 넘어서도 엄마에 기대어 산다. 속이 허해서 힘을 내고 싶을 때도 엄마 손맛을 더듬어가며 재현하고 보이지 않는 내 엄마와의 탯줄을 부여잡으며 이렇게 기운을 짜내고 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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