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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오름 Dec 07. 2022

나의 뇌에게 꼭, 평온과 쉼을 선물하겠어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심장과 머리이며, 그래서 그것들을 아주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심장이 멎으면 사람은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고, 뇌가 풀려서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면 사람은 더 이상 제 힘으로 살 수가 없게 된다.’


-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중 주인공 모모의 말


머리와 뇌에 관해 생각하고 있던 중, 몇몇이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나의 회사 1년 선배였다. 후배들의 실수에 관대하지 않았던 다수와 달리, 그는 참 따뜻했다. 함께 일을 해 본 적은 없지만, 가끔 회사에서 마주할 때면 유쾌하게 이야길 나누곤 했다.


3년 전, 그가 뇌종양을 진단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불과 두 달 전 그와 이야기했던 기억이 생생해서 믿을 수가 없었다. 수술을 마치고 점차 회복 중이지만 말기에 발견한 터라 차도가 눈에 띄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하루 반차를 내고 남자친구와 함께 그가 있는 병실을 찾았다. 그는 웃고 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슬픔에 북받쳐서가 아니라, 뇌 속에 생긴 악마가 말을 할 수 없게 했다. 그는 남자친구의 손을 오랫동안 꼭 잡으며 우리가 만난다는 걸 이미 다 알고 있던 것처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남편과 나는 사내커플이다). "얼른 나으세요. 우리 다시 맛있는 밥 먹으면서 이야기해야죠."  말은 하지 않지만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 같았다.


그의 부모님은 우리에게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아들이 어려운 시험에 붙어 좋은 직장을 다닌다며 자랑스러워했던 지난날이 후회된다며 눈물을 지으셨다. 우리는 홍삼액 한 상자와 수술비에 보탤 소액의 돈을 어머님께 드리고 병실을 나왔다. 나의 아픔은 짧은 순간에 불과하지만, 그의 가족의 고통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란 죄책감을 뒤로 한 채.


그는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매일 야근을 해야만 끝을 맺을 수 있는 업무량 때문이었을까? 사소한 실수에도 질책을 당하는 게 버거웠던 걸까? 예측할 수 없는 일정 때문에 개인의 삶은 저 멀리 치워둬야 하는 삶이 갑갑했던 걸까? 새벽에 퇴근하고 나면 독박육아의 고충을 풀어놓는 아내 대신 아기를 재우느라 몸에 무리가 왔던 걸까? 나는 그의 지난 삶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저, 뇌종양 진단 후 그의 아내는 이혼을 요구했고, 그의 상사들은 자신이 아닌 다른 상사 혹은 그의 아내에게 병의 책임을 돌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재작년 가을, 그는 서른 중후반, 세상을 떠나기엔 너무도 아까운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다.


작년 여름엔, 함께 고시를 준비했던 친구가 찾아와 ‘머리가 부풀어오르는 느낌’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한동안 새벽에 퇴근하기를 반복하던 차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고 했다. 잠시 여유가 생긴 틈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 바로 병원으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부모님도 모시고 오세요.”


의사는 그녀가 선천적인 뇌동정맥기형(동맥이 모세혈관을 거치지 않고 바로 정맥으로 연결되는 혈관의 기형) 때문에, 당장 뇌출혈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의사는 당장 수술을 하래. 그런데 수술을 하다가 무슨 이상이 생길 수 있느냐고 물으니, 하필 기형 혈관이 소뇌 쪽에 있어서 못 걸을 수도 있다는 거야. 그래도 뇌출혈 위험이 단박에 없어지니 수술을 하라는 건데, 나는 평생을 걷지 못하며 살 자신이 없어. 시간은 좀 걸려도 방사선 치료를 받으려고.”


앞으로 3년간 주기적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더라도 완치 전까진 뇌출혈 위험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뇌출혈이 있기 전에 대비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며, 치료 전에 보고 싶었는데 얼굴 봐서 좋다며 웃는 친구의 표정은 담백했고,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쓰라렸다.


최근엔 두 살이나 어린 회사 후배가 뇌종양 진단을 받았고,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 수술 후 회복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아파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혹시 나의 뇌는 괜찮은 걸까 궁금해졌다. 직장인이 된 후로 편두통 혹은 얼굴 떨림, 통증을 자주 느낀다. 편두통의 부위는 왼쪽, 오른쪽, 뒤를 가리지 않는다. 가끔 눈이 파르르 떨렸다가 어느 날엔 입술이 미세하게 떨린다. 스트레스를 받은 날이면 광대 밑 부분이 콕콕 쑤시는데, 통증이 심해지면 얼굴에 얼얼함이 맴돌아 힘겨울 때가 있다.


MRI 검사 결과, 다행히 뇌에 이상이 없었다. 다만, 뇌가 상대적으로 아래에 위치해 스트레스를 받으면 팽창된 혈관이 신경을 압박할 가능성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스트레스를 받아도 통증을 느낄 가능성은 더 높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제껏 나의 예민함은 의지력의 문제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는데, 선천적인 부분에도 책임을 돌릴 수 있어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지만, 한편으론 씁쓸해졌다.


‘두통을 줄이고 싶었는데, 계속 함께 가야 할 존재라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언젠간 일정을 통제하기 어려운 예전의 부서로 돌아가야 할 것이고, 나에게 관대하지 않은 사람들을 수없이 마주쳐야 할 것이고, 생각만큼 성과가 나지 않으면 괴로워할 것이다.  그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매번 병원에 의존할 수는 없다.


내가 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 나의 힘듦과 극복의 여정을 일기로 남기기. 사랑하는 사람들과 위로하며 힘을 보태주기. 그리고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취미생활을 즐기기.


나의 뇌를 위로하는 방법을 잘 모르지만, 마음을 다스리며 뇌와도 오랫동안 건강하게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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