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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오름 Dec 13. 2022

2022년의 회고록

사주를 맹신하는 사람들 앞에서 상상 속에서나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적이 있다. 실은 시어머니께서 우리의 안녕을 기원하며 운세를 받아오시거나, 이삿날과 이사 갈 집의 방향까지 정해주셨단 말을 들을 때 감사한 마음이 들다가도 괜히 꽁한 마음이 피어오르곤 했다(시어머니가 보신 내 운세에, 인기는 많지만 인덕이 없다는 내용이 있어 더 뾰족거렸다).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이 뒤숭숭할 때면 점신 어플을 켜 무료 운세를 본다. 그러다 오랜만에 새해를 맞이해 마음 가짐을 바로 하겠다며 프립으로 전화 사주상담을 신청했다. 자칭 법사라던 그는 올해엔 운의 흐름이 좋을 테니 이것저것 다 해보라고 말했다. 행복을 충분하게 누릴 생각에 설레다가 걱정이 생겼다. “이렇게 운이 좋은 해가 있으면 그렇지 않은 해도 있을 텐데, 그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자 그는 “운이 좋은 해에 열심히 일해서 쌓아둔 것으로 살아가야죠.” 그 말을 들으니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할 것만 같았다.     


상반기에는 회사에서 충족되지 않는 성취욕을 공부로 해소했다. 오랜만에 제대로 공부하니 처음엔 설렜으나, 벌려둔 일이 많아 여러 번 좌절하기도 했다. 남편은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거야? 나는 대학원 다닐 때 자기랑 데이트하느라 수업도 여러 번 빠졌는데. B+도 괜찮은 점수야.”라고 나를 다독였(?)지만, 그 말은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올해엔 운이 좋댔는데 열심히 해볼 거야!” 첫 학기에 12학점을 들으며, 논문 두 편을 써내고, 발표 준비로 새벽을 지새웠다. 잘 해낼까 걱정되고, 쏟아지는 과제가 버겁기도 했지만, 잘 해내고 싶은 간절함을 동력으로 삼아 쭉쭉 나아갔다.     


법사님의 말씀이 맞았는지, 간절함이 통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까지 접점이 없었던 지적재산권법을 듣고, NFT를 주제로 쓴 논문이 교수님께 간택받아 학내 학술지에 등재되었다. 잘 모르는 대상이 궁금해 검색하다 연구하게 된 주제였고, 정작 재테크에는 별 도움을 받지 못했지만, NFT를 시작으로 지식재산권법과 연을 맺은 것이다.


대학원에 지원해 처음 수업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세법을 전공할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내용은 도통 기억이 안 나지만 회계사 자격증이 있으니 안전한 길을 택하는 게 좋을 거란 막연한 기대로 말이다.  하지만, 세법 교수님은 본인 집 근처에 자리한 나무벤치로 부르시더니... “지도교수는 해주겠지만, 나이가 들어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힘들 것 같다. 이래도 괜찮으면 지도교수 해주지”라고 답하시고, 나의 때늦은 출산을 걱정하시다가 다음 약속 상대인 모 변호사의 전화를 받고 떠나셨다.


세법 교수님 밑에선 졸업이 어렵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고민 끝에 지식재산권법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내가 지금껏 걸어온 길을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응? 갑자기 지식재산권법?" 하고 의아해할 것이다. NFT를 향한 호기심으로 신청한 수업은 역대급 인기수업이라 수강생이 100명이 넘었다. 그런데 교수님께선 학생들의 직업을 일일이 메모하시고, 적합한 직함으로 호명해 주셔서 감동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게다가 나의 논문도 좋게 평가해 주시고, 꼼꼼히 피드백도 주신 걸 보면 교수님 밑에선 졸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조심스레 연락드렸다.


지식재산권법 교수님은 세법 교수님보다 한 살 형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력과 관심사를 꼼꼼히 메모하시며, 경청해 주셨다. 밥도 한 끼 사주시고 카페에서 한참 어린 제자와 진심 어린 대화도 나눠주셨는데, 그분의 인품에 존경심이 더욱 깊어졌다. 그렇게 나는 지적재산권법을 전공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이야기를 듣고, “무슨 그런 이유로 전공과목을 선택해요? 세상에 변리사들이며 지식재산권법 전공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무슨 자신감으로 그 과목을 택했어요?” 하고 안타까워하며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세법이나 지식재산권법이나 어차피 잘 모르는 건 매한가지인데 이왕이면 좋은 사람 밑에서 논문을 마무리하는 게 좀 더 정신 건강에 이롭지 않겠느냐고 답하고 싶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사람이 나랑 맞아야 마음고생을 덜 한다는 건 그동안 직장생활이 알려준 가르침 중 하나다.


이렇게 나의 올해는 수월하게 흘러갈 줄 알았다. 하반기에 세 과목을 들으며 논문자격시험 준비를 하고,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을 발전시켜 석사논문을 쓰면 되겠다! 하고 말이다. 하지만 운이 좋은 해라고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건 아닌가 보다.     


하반기엔 정말 고통스럽게 시간을 보냈다. 직장인이 된 지 이제 8년 반이 되어 제법 여유롭게 대처힐 법도 한데, 인간관계 때문에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결정을 하고, 여러 사람들과 부딪히며 최적이 아닌 결정을 내리는 게 힘이 들었다. “전 부서에서처럼 야근을 밥먹듯이 하지도 않는데 왜 난 더 힘들어할까?” 일주일은커녕 하루도 예측하기 힘이 들어서, 보고를 받고 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시달려서, 책임감은 없지만 대접받기는 좋아하는 상사와 함께 있어서, 죄송하지도 않은데 죄송하단 말을 해야 해서, 나도 모르겠는데 결정을 내려주고 부서들에게 통보해야 해서, "아 네네!"라는 말투가 거슬린다며 비아냥거리는 업무관계자에게 애써 예를 갖추어야 해서일까? 아마도 힘든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실은 이 부서에 오기 전까지 소위 라인 조직(계선 조직)에 대한 미련이 있었다. 야근과 주말출근을 반복하며 제법 만족스러운 보고서를 써내도 회사는 내 노력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박탈감이 있었다. 나이도 동기들 중 어린 편이라는 이유로 반년 정도 승진에 밀렸던 게 한으로 남았던 터라, 소위 메인 보직이라는 곳에서 일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회사로부터 쿨해지기를 선언해 놓고선 이 안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 회사에 남더라도 승진하기 전에 조직 관리 경험을 미리 해봐야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이 회사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은 다 해봐야 퇴사하더라도 미련이 없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힘든 자리임에도 지원했다.     


그런데 누가 그랬는데, 지인지조라고. 지 인생 지가 조진다던데, 달 만에 딱 그 명언을 증명해 버렸다. 일은 몰리는데, 정말 무책임해서 속이 터지게 만드는 상사1, 자기 일은 열심히 하지만, 자꾸 가르마를 못 타고 두루뭉술해서 열이 솟게 하는 상사2, 그리고  일을 어떻게 하면 넘길까 고민하는 옆 부서 사람들, 결국엔 입사가 늦다는 이유로 일을 떠안는 현실, 몰리는 업무에 입이 불쑥 나온 직원들을 볼 때면 차라리 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 자리에 온 덕분에 나의 성향을 알게 되었고, 소위 잘 나가는 자리에 대한 미련이 사라졌다. 자꾸만 짜증을 내는 상사에게 쿠키를 챙겨주는 옆 부서 사람처럼 순응적이지도 않고, 윗 선에서 결정되는 일 사이에서 노만 열심히 젓는 것보다는 한정된 분야에서나마 내 뜻이 조금 더 반영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진 모르겠으나, 앞으로는 이런 자리엔 기필코 가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게 됐으니, 잘 된 일이라 믿고 싶다.      


마음을 울고 달래는 데 쏟다 보니, 눈빛이 반짝반짝했던 봄여름의 나 대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겨울의 내가 보인다. 하지만, 조금씩 하다 보면 빛이 보이겠지. 매달 몇 권 읽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50권 넘는 책을 읽어 중학생 이후로 최고 기록을 경신한 것처럼, 또 살다 보면 기회를 맞닥뜨려 새롭게 나아가고 있겠지 하고 생각하려 한다.      


올해의 나, 정말 열심히 사느라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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