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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오름 Dec 12. 2022

감정 기복이 커서 고민해봤는데요

감정 기복의 정도를 계량화할 수 있을까? 표현되는 감정의 기복과 실제 느껴지는 감정의 기복은 어느 정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겠지만, 다른 차원일 것이다. 그리고 전자는 비교가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후자는 불가능하리라.


나 또한 일희일비를 경계하면서도 감정의 기복도, 그 표현의 파고도 매우 컸다. 고시생 시절, 모의고사 점수에 하루는 웃고, 하루는 우울해했다. 공부하기 싫은 마음이 들 때면, 고민하다가 짐을 싸 집으로 가서 한숨 자곤 했다. 아무리 답답해도 독서실 의자에 앉아 ‘참을 인(忍)’을 공책에 적으며 버틴 합격생의 이야기가 떠오를 때 나의 인내심은 겨우 이 정도에 불과하다고 자책하면서.


일할 땐 감정을 배제해야 프로라던데, 실연을 당했던 날엔 그러지 못했다. 예상치 못하게 전 연인에게 차이고 난 다음날, 업무시간엔 가까스로 울음을 참았지만, 점심시간엔 눈물이 터졌다. 엉엉 울고 와 눈두덩이가 부어오른 걸 본 상사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냐며 회사에서 그렇게 티를 내면 어떡하느냐고 혀를 찼다.


감정을 드러내는 게 죄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힘들어도 일할 땐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마음엔 파도가 치는데 태연한 척하기는 너무도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도, 표현하는 데도 기복이 큰 내가 미웠다.


애니어그램 검사 결과, 내가 '자의식이 강하고 민감하다는' 4번 유형이라는 게 싫었다. 하지만, 감정 기복이 큰 만큼, 똑같은 것도 좀 더 다채롭게 경험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좀 더 새롭게 보였다. 감정 기복이 나를 더 고유하고 특별하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하니 전보다 내가 좋아졌다.


나를 좀 더 좋아하고서, 표현의 기복이 전보다는 조금 줄었다. 남들의 말에 상처를 받는 것도, 마음속 파도는 여전하지만 오래 마음을 두지 않으려 노력하고 나를 소중히 대하니 부정적인 감정에 오래 머무르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죄책감 안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빠져나오게 되었으니 감정 기복이 더 커졌다고도 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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