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과 결과 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대입 면접을 볼 때였다. 앞서 지원한 모든 학교들에게서 1차 서류전형부터 불합격 통보를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다행히 마지막 한 대학에서 서류합격이 되어 면접을 보러 갈 수 있었다. 대부분 예상했던 질문이었고, 준비했던 대답을 차분하게 했다. 면접 연습을 오랜 기간 했기 때문에 자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면접관들 그 누구도 고개를 들지 않았고 눈을 마주칠 기회조차 오질 않았다. 무언가 안 좋은 결과로 흘러간다는 직감은 열아홉 살에게도 있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신성적이 낮아 역시 관심도 안주는 것인가? 그래, 학생은 기본적으로 학업성적이 좋아야지.. 아 여기까지 인가..?” 그러던 중 한 면접관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과정과 결과 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오잉..? 이게 무슨 말이지." 당황스러웠다. 500개가 넘는 예상 질문들을 숙지하고 시사 분야를 공부했지만 이런 질문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나를 관통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당시 자기소개서와 생활기록부에 꿈을 향한 과정은 아름답게 풀어냈지만 그렇다 할 학업적인 결과가 없었다. 내 과정과 이상이 대단한 것은 알겠지만 그것이 (학생의 기본인 학업적인) 결과로써 나타나 있지 않은데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고삼에게 대학입시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후 대학이 인생에 미치는 정도를 떠나, 개인에게는 살아온 모든 것을 거는 진지한 시간인 것이다. 그런 시간 속에서 검증을 당한 나는 마치 사기꾼이 된 기분이었다. 남들이 믿어줄 만한 결과는 없으면서 스스로 대단하다고 말하고 다니는 허풍쟁이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면 나의 학창 시절을 모두 부정하는 셈이 돼버렸다. 그러기엔 나의 순수한 자존심이 가만히 있지 못했다. 열아홉, 지금까지의 생을 부정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야 했다.
"사실.. 결과가 더 중요한 거 같기도 합니다. 제가 지원한 대학들에서 다 떨어지고 여기 하나 남았습니다. 제가 기획사 연습생을 했던 과정, 이후 했던 다양한 활동들이 참 의미 있는 과정이라 생각했는데 그 어떤 대학도 면접 기회조차 주지 않아 참 씁쓸합니다." 이어서 나는 대답했다.
"그래도 저는 과정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비록 제가 또 떨어지더라도 스스로 치열했던 과정만큼은 제가 알아줄 수 있으니까... 지금 당장의 결과는 단편적이지만 과정은 영원히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과정들은 이후 또 다른 기회를 만나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지도 않을까요..?"
나에겐 참 의미 있는 '과정'도 이성과 합리의 '결과'의 영역에서는 보잘것없는 것이 되기도 한다. 나의 의미가 누적되고 침전된 삶이 누군가에겐 촌스러운 골동품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순위가 매겨져야 하는 평가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러한 양상을 띤다. 그래서 어쩌면 과정을 추구하겠다는 결심은 외롭고 이상적인 길일지도 모른다. 대입을 결정짓는 평가의 영역에서 나는 참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대답을 했다. 다행히 열아홉이라는 페널티가 있어서였는지, 면접관들은 그 순순하고 패기 로운 진심을 응원하는 셈 쳤나 보다. 며칠 뒤 나는 합격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대입 면접을 끝냈다. 꽤나 패기로웠던 면접 이후 펼쳐진 삶들에는 나의 정답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혀 다른 현실이 만연했다. 놀라울 것도 없이 결과가 중요한 때가 더 많았다. 결과가 없는 과정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고, 형식을 배제한 내용은 그 자체로 사랑받을 수 없었다. 나 역시 여우가 되는 방법을 너무나도 잘 아는 영악한 대학생이었다.
그래도 나는 알고 있다. 결국 말해야 할 정답이 무엇인지를. 비록 지금의 내가 결과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지만, 결국에 내가 가야 할 방향은 과정 자체를 사랑할 줄 아는 삶이라는 것을. 열아홉 궁지에 몰려 본능적으로 나온 나의 대답은 이후 삶을 지탱해주는 밀도 있는 정답이 되어주었다. 언젠가 그런 때가 꼭 왔으면 좋겠다. 결과의 여부를 떠나 과정 자체를 사랑할 수 있을 때가. 그런 성숙한 때가 올 때까지 부단히 도 애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