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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Oct 13. 2020

동그라미 방학 계획표

나의 지구에 착륙하는 방법

 방학이 시작되면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렸다. 방학 계획표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8절 도화지에 큰 그릇을 대어 동그라미를 그렸다. 중심에서 바깥으로 줄을 그어 시간을 나눴다. 거기에 계획하는 바를 적고 색칠한다. 그어진 선처럼 계획이 지켜질 거라는 바람. 색칠된 면처럼 내 방학도 다채로울 거라는 바람. 미래를 꿈꾸는 그 시간이 좋았다.


 더 이상 방학 계획표를 그리지 않는 나이가 되면서 알게 된 첫 번째 사실이 있다. 무언가 바라는 건 굉장히 피곤한 일이라는 것이다. 바라는 대로 될 확률은 지극히 낮다. 우연에 기대어 사는 게 편리하다는 걸 알아버렸다. 인간의 사유는 이럴 때에 적극적으로 발동한다. "그래! 인생은 어차피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 무언가 바라는 삶은 철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삶이지."라는 생각. 그와 더불어 현재에 충실하라는 메시지. 카르페디엠이나 YOLO와 같은 멋진 말들을 꿈을 타협하는 데 사용했다. 무언가 바라면서 애쓰며 사는 것보다 되는대로 살아가는 게 편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우연한 횡재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삶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공허함이다. 어떠한 바람이 없는 하루는 공허했다. 그 공허함의 날들이 쌓이면 꽤 시렸다. 그렇게 알게 된 두 번째 사실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좌절보다 더 큰 아픔은, 아무런 바람 없이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느끼는 속상함에는 이유가 있지만, 의도 없이 살아가는 삶에서 느끼는 공허함에는 이유가 없었다. 인생의 무의미함과 공허함을 피할 수 없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그제야 인정하게 되었다. 아직은 꿈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두 번째 사실을 알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은 마치 고요한 우주를 유영하는 것과 같았다. 그 어떤 강요도 없었으니까. 어떤 것에도 정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 중력이 작용하지 않았다. 선택 앞에서 너무나도 방황했고, 확신을 갖기까지 무중력 상태로 수없이 흔들렸다. 하지만 다시금 지구에 착륙했을 때, 나아가는 걸음에 나의 중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구 밖 우주를 유영하며 무중력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몰랐을 것이다.


 언젠가 세 번째 사실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많은 철학과 사상들이 말하는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이상적 지점. 무목적과 해탈, 미련을 버리는 것 혹은 또 다른 이상향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세 번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책으로는 무수히 읽었지만 쉽사리 행하지 못하는 것은 내 마음이 아직 거기에 닿아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를 '모른다'라고 한다.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할 순 없는 셈이다. 언젠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를 그 세 번째 사실은 미래에 공손하게 남겨두려고 한다.


 동그라미 계획표도 실은 지켜지지 않는 때가 많았다. 하지만 동그라미 계획표의 의미는 달성률이 아닌 '믿음'이다. 오늘 해내지 못한 계획이 속상하지만, 어떤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의 이정표가 계획표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어릴  그렸던 동그라미 계획표. 그건 믿음과 꿈의 방향이 존재하는 '나의 지구'였다. 지 내가 착륙하지 못한 채 우주 어딘가를 유영하고 있다면, 어떤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는 믿음을 추구하는 순간. '나의 지구' 착륙할  있을 것이다.


계획은. 착륙은. 믿음에서 시작된다.

두 발 디딜 곳이 생긴다면, 당신은 그 때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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