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 Oct 16. 2020

나 혼자 그만 산다.

인간이 결코 혼자가 될 리 없다.


 인간은 결코 혼자가 될 순 없다.

라는 문장을 싫어했다. 인간이 꼭 무언가에 의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약한 존재로 여겨져서다. 나는 늘 혼자 살고 싶었다. 어렸을 때는 술을 먹은 아빠가 언제고 나를 깨울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고등학교 기숙사에서는 혼자만의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서울에서 자취할 때는 친형과 함께 살았는데, 생활습관이 맞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언젠간 혼자 살 날을 꿈 꿔왔다. 함께하는 불편함이 없는 삶. 그런 최선의 환경에서 최선의 내가 될 수 있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드디어 혼자 자취를 시작했다. 군대를 다녀온 후 기회가 생긴 것이다. 26년 만에 정말로 혼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혼자 사는 삶은 참 좋다. 나의 통제 아래 가능한 게 많아졌다. 청소의 주기도 물건의 위치도 그 어떠한 행동도 참견받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이 없는 집이 이렇게나 좋은 거였다니. 공교롭게도 그즈음에 나는 그 어떤 집단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무언가에 속한다는 게 가능성을 제한하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어딘가에 종속되어 어떠한 의무들로 내 일상을 채우기 싫었다. 그러다 보니 정말로 혼자가 되었다. 원했던 홀로였지만 외로움이 그렇게 반갑지만은 않았다. 외로움을 심하게 느낄 즘에는 거기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외로워도 이런 자유가 옳기에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진정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 어디에도 속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혼자 산지 1년째가 되면서 외로움을 '앓기' 시작했다. 어떤 일을 할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혼자 만의 시간 속에서 하는 혼자만의 생각들은 적정선을 넘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불안과 걱정의 형태를 띠기도 했고, 어떤 날은 비관의 형태를 띠기도 했다. 생각은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날도 생겼다. 혼자였기에 이게 문제인지도 봐 줄 사람이 없었다. 그게 가장 심각했다. 


 그러던 중 부산에서 며칠간 지낼 일이 있었다. 엄마가 일 문제로 급하게 부산에 방을 구하게 되었는데, 마침 엄마도 혼자 지내려니 적적했고 나 역시 특별하게 서울에 묶여있을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뭔지 모를 이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해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한달음에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내려간 날 밤에 나는 엄마 옆에서 참 잘잤다. 의아했다. 나는 누가 옆에 있으면 깊게 잠을 못 잔다. 그런데 그 날 밤은 누군가 옆에 있어서 오랜만에 깊이 잠들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 밤에 한 산책 약속을 그냥 몇 분 더 자는 걸로 합의하는 시시콜콜한 대화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함께 아침을 먹고 나는 카페로 엄마는 일터로 나갔다. 저녁에 집으로 들어올 즘에는 함께 장을 보고 저녁을 먹었다. 그러곤 누워서 함께 TV를 보거나 책을 읽다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잠에 들었다. 


 내 옆 사람과 온기를 느낀다는 것이 이렇게나 새롭게 느껴질지 몰랐다. 하루를 시작하며 생명체의 온기를 느끼고 하루를 끝내며 생명체의 온기를 확인하는 것의 따뜻함을 알게 되었다. 비록 잠은 깊게 못 잘 지언정 살아있음을 깊게 느꼈다.


 혼자만의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자연스레 스스로의 우주에 갇히게 된다.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살다보면 어느새 ‘혼자’의 감옥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고 싶어 혼자가 되길 택했는데, 역설적으로 ‘혼자’에 종속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은 꽤 시린 삶이다.


 다시 나는 서울에 왔다. 그리고 여전히 혼자다. 하지만 '혼자'에 종속되지 않는다. 내 옆에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코 혼자가 될 순 없다.'라는 문장을 싫어했다. 꼭 무언가에 의존해서만 살아갈 수 있는 약한 존재로 여겨져서. 하지만 이제는 그 뒤로 생략된 문장들이 눈에 보인다.

'인간은 결코 혼자가 될 순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충분히 혼자가 될 수 있는 존재지만, 동시에 함께가 더 좋은 걸 아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좋은 걸 아는 '인간이 결코 혼자가 될 리 없다.'


 인간은 무언가에 의존해서만 살아갈 수 있는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인간은 불편함을 예견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있기를 택하는 강한 존재다. 자칫 나를 헤칠 수 있는 종속의 불편함을 알면서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인간은 기꺼이 종속을 감수하니까. 

작가의 이전글 동그라미 방학 계획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