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 후에 뵙겠습니다.
나는 돌아서면 머리자를 때가 되어있다. 젊은이가 거울을 매일 들여다보고 있으니 자라는 게 잘 보이는 게 아닌가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인 이유는 머리가 빨리 자라서 그렇다. 나는 머리가 빨리 자란다. 여름에는 머리카락 사이사이의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열기가 땀으로 흘러내리고 겨울에는 정전기로 머리가 뻥튀기된다. 가뜩이나 큰 머리가 더 커지면 청춘에겐 스트레스다. 그래서 나는 늘 머리에 어느 정도 신경을 쓴다.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보통 남자가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가는 주기는 한 달에 한 번이다. 나는 머리를 자른 지 2주가 지나면 미용실에 급격히 가고 싶어 진다. 빠르게 자라 버린 머리 길이와 숱을 감당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달에 두 번 미용실을 갈 정도의 사치는 허용되지 않는다. 비슷한 용돈을 받으며 한 달에 한 번 쓸 돈을 두 번 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참는 쪽을 택한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았다가 미용실에 가는 것이다. 여름에는 보통 3주째에, 겨울에는 4주째를 이삼일 남기고 미용실로 간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온 후에는 1년째 같은 미용실을 다니고 있다. 디자이너분이 처음에는 내 머리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머리 자른 지 얼마 안 되지 않았어요? 어, 근데 머리가 지저분하긴 하네요..!"
그런데 1년째 가다 보니 이제는 4주를 무사히 참고 온 나를 잘 알고 대견해하신다. "올 때가 됐는데 왜 안 오나 싶더라고요. 하하."
그러고 물어보신다. 옆머리는 투 블럭으로 칠까요? 아니면 다운펌 하실 거예요? 내 진짜 고민은 사실 여기서 시작된다. 옆머리를 밀어버리는 투블럭을 택할 것인가. 옆머리를 눌러주는 다운펌을 할 것인가. 투블럭은 추가 비용은 없지만 결국 빨리 자라서 3주 만에 옆머리가 지저분해진다. 다운펌은 추가 비용이 들지만 두어 달 깔끔하게 옆머리가 지속된다.
투블럭에는 왠지 모를 야성적인 매력이 존재하고, 다운펌에는 왠지 모를 부드러운 매력이 있다. 내 다음 달의 컨셉은 미용실을 가는 날,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 봤자 도찐개찐이라는 것을. 그 사소한 차이는 나 이외에 이 지구 상에서 그 누구도 몰라봐줄 것이며, 내 고민의 진지함을 그 누구도 알아줄 리 만무하다는 것을. 옆머리를 밀던지, 누르던지 한 달 뒤에는 어차피 같은 모습이니 말이다.
그래도 미용실은 갈 때마다 기분이 좋다. 내 나름의 성취감을 가지고 가는 자리니까. 한 달 동안 잘 기른 보상으로 투블럭과 다운펌 중 취향껏 고민할 수 있는 자리니까. 어떤 선택을 내려도 새로움을 느낄 수 있으니까. 선택이 설렘이라는 기쁨으로 이어지는 건 분명 축복이다. 그것도 이렇게 일상적인 것에서 말이다.
내일은 미용실에 가는 날이다. 머리를 자른 지 정확히 26일째가 되는 날이다.
아, 이번엔 뭘로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