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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Nov 11. 2020

타이베이를 세 번이나 간 이유

몇 번을 가도 괜찮은 장소가 있다. 내게 그곳은 타이베이다.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 주변에서는 비싼 비행기를 매번 같은 곳으로 끊는 게 아깝지 않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맞는 말이다. 내가 비행기를 탈 일은 기껏해야 일 년에 한 번 정도였으니까. 그 쉽지 않은 기회를 쉽고 아깝게 만들어버렸다고 해도 부정할 수 없을 테다.


여행을 구태여 쉬운 것으로 만들어버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의 나는 일상의 도전만으로도 충분히 어려운 것 투성이었다. 돈 주고 떠나는 여행까지 어려울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일상의 어려움을 달랠 방법은 여행을 통해 새로움을 느끼는 것이었다. 어렵진 않지만 새로움은 줄  수 있는 그런 경험. 그래, 내게는 '쉬운 여행'이 필요했다.


'쉬운 여행'에도 처음은 있었다. 스무 살, 처음으로 타이베이를 갔다. 친구와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여행을 계획하지도, 그렇다고 친구를 즐겁게 해 주지도 못했다. 모든 일정은 친구가 짰고, 친구는 열심히 여행했다. 그런 친구의 열정에 비해 나는 신날 수 없었다. 그저 이어폰을 꽂고 걷고 걸으며 새로운 목표를 다짐하기만 했다. 첫 타이베이 여행은 일상의 도전을 위한 연료 정도였다. 그 연료에 미안하게도 친구의 설레는 여행이 중첩되어 있었다. 결국 여행 마지막엔 싸우면서 귀국했다. 다행히 한 달만에 화해를 했고 지금까지도 징그럽게 보고 있다.


일 년 후 비슷한 시기에 두 번째 방문을 하게 되었다. 그 방문에는 사촌들과 함께 했다. 빡빡했던 첫 경험 덕에 두 번째 여행은 여유로울 수 있었다. 여유로움 속에 발견한 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첫 방문 때는 느끼지 못했던 사람 사는 온기를 느꼈다. 특히 타이베이의 저녁 7시에는 온기를 느끼기 참 좋은 시간이었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학원 가기 바쁜 저녁 7시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농구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퇴근시간 지하철에서도 손에 들려 있는 기계는 없었다. 그럼에도 바라볼 것들은 있었다. 서로의 눈 그리고 풍경. 목적만 바라보느라 자국에서 잊고 살았던 사람 냄새를 타국에 와서야 맡았다.


다음 해도 여김 없이 같은 시기에 타이베이로 갔다. 이번 타이베이 투어의 게스트는 엄마였다. 지도를 보지 않고도 여행할 수 있었다. 매년 같은 택시투어를 이용했는데, 매년 보던 택시 운전사분이 다음에는 제발 여자 친구와 오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내년에 온다면 다른 택시를 타야겠다고 다짐했다.) 엄마와의 여행은 완벽했다. 난 이미 타이베이의 명소를 잘 알고 있었고, 숨겨져 있는 맛집까지 등록되어있는 인간 VIP내비게이션이었다. 내가 잘 아는 여행지에 엄마를 데려갈 수 있는 건 행운이라는 걸 느꼈다.


그렇게 한 해를 시작하며 줄곧 타이베이를 갔다.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무언가 끝났다는 말이다. 한 해가 시작하기 전 분명 한 해가 끝났을 것이다. 나의 이십 대 초반의 끝나버린 해 들은 늘 탐탁지 않았다. 지난해에 도전했던 바람들이 실패로 끝나서 연초는 늘 심란했다. 그 심란한 마음을 달래고자 나는 줄곧 타이베이를 갔다.

 

흔히들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한 해의 시작이 봄이라는 것이다. 한 해의 시작은 아주 추운 겨울이다. 이십 대 초반의 1, 2월들은 모두 심란했어서 한 해의 시작이 겨울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 수 있었다.


숨만 쉬어도 즐거워야 할 때에 심란했다니. 이보다 미련한 이십 대는 없었을 것이다. 미련한 이십 대에게 해외여행이란 그런 것이었다. 휴식으로써 필요한 탈출구.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한 연료. 여행을 탈출구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나에게 참 미안하다. 스무 살 청년은 뭐가 그리도 급하게 성공하고 싶었을까.


그렇게 떠난 타이베이에서 가져온 기념품은 펑리수도, 미미 크래커도 아니었다. 또 다른 현실적인 것들이었다. 첫 방문인 스무 살 때는 다음 해엔 잘 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두 번째 방문인 스물한 살 때는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되리라는 '더 큰 희망'과 함께. 세 번째 방문인 스물두 살 때는 이만하면 되었다는 '체념'과 함께 귀국했다.


이후 타이베이를 다시 가지 않았다. 네 번째 방문은 없었다. 이제는 다른 것을 바라봐도 괜찮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이후 나의 여행은 타이베이가 아닌 호이안과 방콕을 향하고 있었고, 도쿄와 제주도를 향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가지고 있던 것을 놓기란 결코 쉽지 않다. 타이베이를 세 번 방문할 동안 한 가지 꿈을 길게 쥐고 있었다. 그것 말고는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해서. 이 긴 시간은 오히려 더 큰 반등의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래 올 한 해만 더. 올 한 해만 더. 나는 꽤 오랜 시간 하나의 꿈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도전은 이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람은 힘든 기억은 망각한다고 하던가. 살기 위해 몸이 알아서 잊어주었다.


그럼에도 타이베이는 잊히지 않았다. 몸이 지우지 않은 걸 보니 좋은 기억이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선명하다. 꿈꾸던 이십 대 초반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라 발버둥 치며 눈물을 흘렸던 시기. 그 시기에 탈출구랍시고 타이베이를 갔던 건 다행이었다. 낭만이라곤 성공밖에 없다고 믿었던 그때. 친구는, 가족은, 엄마는 그런 꽉 막혀있던 나임에도 불구하고 곁에 있었으니까. 가장 아름다울 때 가지지 못할 뻔했던 추억을 만들어주었으니까.


타이베이는 서투르고 미련했던 시기에 유일하게 쉽고 편하게 여행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쩌면 내 인생에서 없었을 풋풋한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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