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제목이라도 그 내용은 다를 수 있다. 제목은 된장찌개인데 들어가는 재료는 저마다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간단하게 두부와 파 정도만 넣고 먹을 수도 있고, 양파나 애호박, 고기까지 넣어 풍성하게 먹을 수도 있다.
풍성하게 먹는 것은 고민된다. 자취생이 혼자 먹을 '끼니'에 사치를 부리는 건 쉽지 않다. 사 먹는 거보다 비싸게 치이면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당하게 가성비 있게 요리하게 된다. 엄마가 해준 것처럼 무도 고기도 갖은양념도 없지만 두부와 양파 호박만으로도 얼추 구색이 갖춰진 맛있는 된장찌개를 만들 순 있다.
가성비를 고려한 '끼니'에는 듬성듬성 비어있는 곳이 있다. 재료 탓만 하기에도 뭔가 석연찮다. 이럴 때면 "음식은 정성"이라는데 정성이 없어서 그렇나 싶기도 하다. 나 스스로에게 정성을 다하며 사는 건 또 한 편으로 다른 피로감이 드니까. 그래서 정성보다는 편리함을 택하게 되니까.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이유는 편리함보다는 정성을 택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이 되었다. 그러면 두 사람 이상이 한 집에서 같이 밥을 해 먹을 수 있으니까.
먹고 나면 공허한 '끼니'들에 질릴 때쯤이었다. 외갓집에서 김장을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마침 서울에 사는 형도 내려갈 참이라는 얘기에 나도 같이 외갓집으로 떠났다. 외갓집은 경북 예천의 시골마을이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김장김치는 허투루 진행되지 않는다. 육 형제가 먹을 양의 김장김치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그마치 피붙이 24명의 밥상에 1년간 매일 올라갈 김치를 만드는 일에 '대충'이 있을 리 없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직접 밭에서 재배한 배추, 무, 양파, 파는 그냥 먹어도 단맛이 난다. 평생 농사를 지으신 할아버지는 몇 년 전에 건강문제로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겠다며 가족에게 은퇴를 선포했다. 그래서 올해 김장에 들어갈 배추는 산 배추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은퇴 선언이 무색하게 많은 배추들과 양파와 파, 그리고 갖가지 농작물들은 여전히 밭에서 자라고 있었다. 경제활동을 위한 농사에서는 은퇴할 수 있지만, 자식들 먹일 농사에서는 평생 은퇴할 수 없나 보다.
집에 오니 유아 대 여섯 명은 들어갈 수 있을 방대한 '다라이'가 보였다. 양념을 만들 '다라이'다. 이 큰 '다라이'에 맞는 양념 비율을 알려주는 요리서적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세상에 알려진 계량으론 정의 내릴 수 없는 '다라이'다. 오직 내공으로 제조되는 이 양념엔 온갖 재료가 들어간다. 강화도 대명항에서 공수해온 젓갈, 예천의 태양을 머금고 직접 기르고 빻은 고춧가루, 사과 배 등이 한대 섞인다. 점점 더 빨갛고 되직해지는 양념에는 일말의 빈틈이 없다. 나 혼자 끓여먹는 된장찌개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 양념에는 정성으로 표현될 수 없는 영양과 사랑이 축적되어있다.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된 내리사랑 속에서 김장김치의 밀도는 높아져만 간다.
이렇게 할아버지의 채소와 엄마의 양념이 버무려져 밀도 높은 김장김치가 탄생한다. 그 김치는 일 년 동안 서울에서, 대구에서, 마산에서 자식들의 밥상 위에 올라온다. 내가 끓인 가성비 된장찌개 옆에도 슥- 김치를 내어 놓는다. 여전히 혼자 먹는 밥이다. 하지만 김장김치 한 입이 나의 허한 부분을 채워줄라 치면 그제야 나의 '끼니'는 '식사'가 된다. 먹고 나면 느껴지는 더부룩하지 않은 기분 좋은 배부름이 그 이유라면 설명이 될까. 그리고 그것은 꽤 큰 위로를 가져다준다.
오늘도 김장김치 한 젓가락에 밀도 있는 에너지를 채우며 든든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