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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Dec 31. 2020

향유를 피워낸 춤. 아니, "땐스".

영화 <땐뽀 걸즈, 2017>

학창 시절 춤추는 걸 좋아했다. 학교와 학원이 아닌 무대 위에서의 내 모습이 좋았다. 하지만 학교와 학원을 제외하니 내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 많지 않은 시간에 몰래 춤추는 영상을 보고, 춤을 추곤 했다. 그 시간이 나름 의미가 있었는지, 중학교 축제 때 친구들과 무대에 올라갔고 1등을 했다. 그때, 나도 이렇게 지금 당장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이후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댄스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때도 내 마음은 늘 점심시간 저녁시간 춤을 추던 시간으로 가 있었다. "이럴 거면 춤을 주 업으로 하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하늘이 알았는지, 동아리 공연을 하던 중 기획사에 캐스팅이 된다. 그러나 좋았던 것도 잠시, 막상 진행되었던 트레이닝 과정은 이제까지 삶의 방식과는 많이 달랐다. 매번 큰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여기서 말하는 위험이라 하면, 친구들이 공부를 할 시간에 나는 춤을 추는 것이다. 자연스레 떨어져 가는 성적에 '학생'인 나는 불안했다. 그 불안은 한동안 지속되었고, 이후 얼마 되지 않아 그토록 바랬던 그 길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때부터, 예술을 한다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본다는 건 점점 더 판타지처럼, 멋있지만 참 어려운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영화 <땐뽀 걸즈>에 나오는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이하 '거제여상') 학생들의 삶은 우리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의무를 해나가며 알 수 없는 미래를 고민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땐뽀'(댄스스포츠)가 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춰야 하는 춤이라는 행위 앞에서, 어느 날 그들의 마음은 흩어진다. 분명 연습을 약속하기로 한 대회 이틀 전에, '현빈'이가 알바를 뺄 수 없어 연습 참가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단장 '시영'은 화를 낸다. "쌤, 나는 아빠랑 약속 취소한 거 말도 안 하고 있는데, 빡쳐요 안빡쳐요!" 자기는 당분간 보지 못하는 아버지와 마지막 식사를 포기하면서까지 연습에 참여하는데, 친구는 알바에 가야 한다고 연습에 빠져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각자의 힘든 사정 앞에서 저만 내빼고자 함이 분명 야속했을 것이다.


각자의 힘든 사정. 춤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그들을 떠난 적이 없다. 선생님은 이런 사정을 그저 듣는다. 그들이 당장에 '땐뽀'를 그만둔다 해도 그 이유는 늘 정당하니까. 안 한다고 강요할 수도, 문제들을 대신 해결해 줄 수도 없다는 걸, 선생님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경제가 바닥을 칠 때, 전쟁이 발발할 때 예술은 사라진다. 예술은 잉여생산물이 있을 때, 즉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되어 여유가 있을 때 활성화되고 발전한다. 이는 역사가 아주 잘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인간 개인의 삶에도 별반 다르지 않게 적용된다.


삶이 먹고살기도 빠듯해 전쟁 같다면 예술은 어렵다. 거제를 지탱해주고 있던 조선산업이 위기에 접어듬으로써 많은 거제 주민들의 삶은 전쟁이 되어버렸다. 땐뽀 걸즈의 학생들은 자신의 삶이 전쟁이라는 것을 매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횟집이 잘 안돼서, 집세를 내기 위해 알바를 가야 해서, 돌봐야 할 동생들이 너무 많아서, 집이 너무 시골에 있어 버스가 빨리 끊겨서. 등등.


하지만 선생님은 결코 이들을 자신들의 삶이 전쟁이라고 믿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선생님은 아주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삶에 댄스스포츠가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주고 있었다. 더운 여름날 춤 연습이 끝나면 삼겹살을 사 와 구워 먹이고, 시골에 살아 차가 빨리 끊기면, 연습이 끝난 밤늦게라도 데려다준다. 그러면서 동생들이랑 먹으라고 빵도 사서 쥐어준다. 아주-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선생님은 '전쟁'이 어떻게 '여유'로 발돋움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었다. 그건 참으로, 요란하지 않은데 대단한 일이다. 하마터면 '전쟁'으로 여기고 살았을 그들의 삶에 조금의 예술을 칠해감으로써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으니까. 고작 삼겹살 몇 덩이와, 빵 몇 조각, 경청, 그리고 스텝과 동작으로 말이다.



학생들의 무수한 스텝과 동작들로 쌀이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신 다른 것들을 얻는다. 학교에 갈 이유를, 가족에게 자랑할 하나의 꼬투리를. 행복할 수 있다는 경험적 단서를.


여전히 예술을 한다는 건 쉽지 않다. 꼭 예술뿐 아니라 스포츠, 취미생활 모두 동일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일상의 어떤 기반을 흔들리게 한다고 여겨지면, 쉽사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기반은 대부분 경제적인 문제와 맞물려있다.


거기에 '땐뽀 걸즈'의 선생님과 학생들은 몸소 보여주고 있다. '전쟁'과 '여유'는 사실 한 끝 차이라는 것을. 팍팍한 삶에서 조금씩이라도 향유를 추구하는 과정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삶의 아주 작은 부분에서 향유를 꽃피울 때, 우리의 삶은 '전쟁'에서 '여유'로 나아갈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척박한 전쟁 속에서 '향유'를 피워낸 그들의 춤에, 아니 "땐스"에 큰 환호를 보내고 싶다.

(P.S 선생님은 '춤'이 아니라 "땐스"라고 부르는 게 좋으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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