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성헌 Feb 08. 2022

세비야 대성당 경비에게 지은 죄

요즘 여행기 (1)


때는 2022년 1월 22일, 중앙유럽 표준시(UTC+1) 10:50경(사건 발생시각)



   

안달루시아를 렌터카로 종주하고, 우리(나와 아내, 그리고 딸)는 전날 저녁 세비야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다. 나름 긴 드라이빙을 한 터라(말라가 출발 후 마르베야, 론다 들러 세비야 도착하는 약 253Km 코스), 푹 자고 나온 상황이었다. 조식도 햇반으로 때우고 급한 마음으로 향한 최초 목적지는 당연히 호텔 근처 세비야 대성당(Cathedral, Alcázar and Archivo de Indias in Seville).


통상적 여행 상황이었다면 대성당 입장권을 아마 한국에서부터 예약해서 프린트까지 해놨을 터이나, 애초에 출발 당시부터 일정이 유동적이었던 점, 현지에서 보니 관광객들이 없어서 무슨 예약 자체가 필요 없었던 점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해서, 예약은커녕 아무런 정보 없이 대성당 앞으로 갔다.


알다시피 유럽의 ‘대성당’이란 건물들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한데, 세비야도 그렇다. 근처에 도착해보니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감이 안잡히는 거다. 이런 경우 보통은 관광객들이 와글거리는 줄 근처로 가서, 이후에 뭘 해야할지 정보를 얻거나 눈치를 보면 되는데, 줄은커녕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거의 없어서 난처했다. 그도 아니면 돔 반대 쪽 대문으로 가면 대개 뭔가 있는데, 이 건물은 중정도 있고 막힌 문도 많고 해서, 경험으로 쌓은 직관도 잘 안먹히는 상황이었다(나중에 생각하니, 이 건물이 원래 모스크였지, 하는 자각이 들었다).




그렇게 무작정 입구를 찾아 모퉁이 하나를 돌았는데, 작은 입구가 보이고 그리로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이다. 중년의 경비가 있었는데, 들어가는 사람들은 경비에게 고개만 까딱하고, 경비도 그냥 들여보내는 것을 보았다. '헐 코로나 시국이라 성당도 무료야?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아니던데... 세비야 대성당은 다른가보네, 와우 그라시아스. 웬만한 관광지는 다 백신패스 하던데, 역시 근본 있는 성당이라 전염병 보균 여부 묻따 안하는구먼. 제대로 된 생츄어리라면 역시 그래야지' 이런저런 생각(되도않을 뇌피셜)을 하며, 식구들을 데리고 입구로 갔다. 최대한 정중한 표정과 말투로, “Can... we (입구 향해 조심스런 손가락질)”

세비야 대성당 어느 모서리. 건물 참 크다. (C) Kang Sunghun, 2022

그러나 경비는 상당히 당황해하며 ‘노, 노’를 외치고, 스페인어로 무슨 말을 했다. 마스크를 안 썼는데, 표정도 좋지 않았다. 물론 나는 스페인어를 알아듣지 못하지만,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인 것은 알겠고, 이것들 뭐지, 라는 표정인 것도 알 수 있었다. 순간 짜증이 났다. 이자들이  ‘차별’ 하는구만. 우리가 성당 들어가기에 부족한 행색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혼자나 다른 사람들이면 모르겠는데, 식구들도 딸린 터라 그냥 넘어가서는 안되겠다는, 여행자로서는 사실 피해야할 마음이 스물스물 들었다. 뭐, 전에 안해 본 행동은 아니긴 하다.




“세뇰, 와이, 와이” “(경비 : 스페인어)”

“뻬르돈(sorry/pardon), 잉글레스” “(경비 : 스페인어)”     


나름 정중히 얘기하다 본격적으로 화가 난 나는,

“뚜, 섬카인드 레이시즘? 너 쉬바라 파쇼야? 와이 낫?”

위 문장 비슷하게 영어 서반아어에 한국어 욕설을 다 섞은 채로 나지막하게 을러댔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나는 양 팔로 입구와 바깥을 번갈아 가리키면서 “화이트 부에노(yes/OK), 옐로우 노? 유 레이시스트”라고 말했다. 한 서너 번 반복한 것 같다. 그때, 경비의 눈에서 묘한 당황함이 스친다고 느꼈다. 순간, ‘아 뭔가 잘못됐을 수도 있겠다, 내가 오해한 부분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나는 탈룰라처럼, “부에노, 세뇰, 부에노, 오케이”라고 말하며, 식구들을 데리고 그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때 경비가 “쏘리, 쏘리” 한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뭔가 불쌍한, 뻘쭘함 섞인 표정을 지었던 것은 분명하다. 귀국 후, 당시 일을 어렵게 꺼낸 나에게 아내와 딸도 그리 말해줬다. “아저씨 되게 뭔가 억울한 표정이셨어”


그래도 당시 내 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작은 입구가 있던 그 모서리를 한번 더 도니, 그제서야 입구가 보였다. 잽싸게 모바일 티켓을 끊고, 실시간으로 입장했다. 그래도, ‘왜 저쪽 통로로 성당 들어가는 사람들은 표검사도 안했던 걸까’라는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히랄다 종탑에서 내려다 본 세비야 시내. (C) Kang Sunghun, 2022

히랄다 종탑부터 올라 종들과 세비야의 오전 모습을 감상하고, 내려와서  내부는 기대했던 대로 장관이었다. 내가 제일 보고싶던 것은 콜롬버스의 관이었지만, 프레스코화, 그리스도상, 무지막지한 규모의 아름다운 성궤... 보물들. 스테인드 글래스, 고개를 꺾지 못할 아름다운 천장들.

세비야 대성당 내부. 성궤와 콜럼버스의 관. (C) Kang Sunghun, 2022

직전 겪은 ‘차별’의 짜증은 어느새 손바닥에 잠깐 머물다 간 모래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사진과 영상을 찍고, 감상하면서 성당 곳곳을 흘러다니던 차에.


한쪽 예배당에서 왁자지껄한 소리, 음악소리가 들리더니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펜스가 쳐져 있었고, 관람객들이 펜스 앞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거기에 끼어 예배당쪽을 보니, 신랑신부와 하객들이 나오는 것이었다. 잽싸게 동영상을 찍으며 처음 든 생각은, '와 여기서 결혼식을 하네, 이 무슨 슈퍼간지람. 하객들도 차림새가 멋지네. 다들 선남선녀군' 이런 정도였는데,

세비야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예배당을 나온 신혼부부와 하객들. (C) Kang Sunghun, 2022

순간 ‘엇’ 하는 자각이 들었다. '아, 아까 그 작은 입구는 이 예배당으로 통하는 길이었구나, 내가 본, 그 길로 들어간 사람들은 하객들이었구나' 하는 자각 말이다.


'아. 동양인이라 막은 게 아니네. 하객이 아닌 게 분명하니 막은 거네. 아저씨 스페인어로 그 얘기 했겠네. 서반아어도 못하는 놈이, PC를 무기로 헛짓거리 했네. 최소한 모욕죄 현행범이네. 와 진짜 미안하고 창피하네'


사실 그때부터 대성당 내의 걸작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조금, 아니 훨씬 더 있을 수도 있었지만, 더 구경해야 했지만, 나가고(실은 도망치고) 싶어졌다. 흩어져 성당 곳곳을 둘러보던 식구들을 찾아, “나가자, 광장 가야지” 하면서 이끌었다. 식구들은 별다른 말 없이 따라나왔고, 본당을 나와 중정에 있는 기념품점에서 쇼핑을 하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스페인광장을 향해 구글맵이 알려주는 도보길 초입에 '작은 입구'가 있었고, 아저씨도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이미 커다란 죄책감에 사로잡혔던 나는, 바로 가서 사과해야 했다. 최소한 고개 숙여 "뻬르돈, 암쏴리" 라도 해야 했다. 그럴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혼자였다면, 아니 가족 아닌 다른 일행들이 있었다면 분명히 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염치없는 놈은 아니다. 그런데 그놈의 가장의 가오가 뭔지, 주저주저 하는 사이에, 우리들의 발길은 아저씨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성당에서 결혼식이 있었다는 사실을 식구들은 모르는 듯 했고, 그렇다면 그들은 내가 오해해서 멀쩡한 사람을 레이시스트, 파쇼로 몰아붙였다는 사실도 모를 테니, 이렇게 묻고 가자, 하는 알량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뭐, 당시 정확한 심경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대성당을 떠났지만, 그 일은 나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다. 파시스트로 오해를 해서 남을 비난할 수는 있다(유서 깊은 성당의 문지기라서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여행지라는 장소에서 불측의 위험을 감수하고 현지인의 면전에 막말도 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오해임을 알았음에도, 오해로 인해 한 결과적 악행을 시정하지 않은 내 행동이었다. 특히, 마지막 보여줬던 그의, 뻘쭘하다고 해야 하나, 억울하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의 그 표정이 내내 마음을 짓눌렀다.


하아. 얼마나 더 나이를 먹고, 얼마나 더 판단착오를 하고, 얼마나 더 어줍잖은 화를 내어야, 내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고 정중히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정상적 인격체가 될 수 있을 것인지.




귀국하고 자가격리를 했고, 그 기간이 끝날 무렵 이 이야기, 이 경솔하고 졸렬한 이야기를 독서모임의 게시판에 짧게 적었다. 일종의 자백. 그 글에 한 친구는 댓글로, “안내문 제대로 붙여놓지 않은 성당이 잘못했네”라고 해 주었다.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식구들에게도 털어놓았다. 둘은 모르고 있었고,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들도 아저씨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래, 딸 네가 먼저 가서 물어봤으면 좀 다를 수도 있었을거야. 니가 잘못했네" 하면서 웃고 넘겼다. 애초에, 광장 가는 그 길에서 아저씨께 사죄하고, 식구들에게 말해줬어야 했다.


올여름  여행(혼행이다) 계획은 암스테르담 스키폴에서 어딘가를 거쳐 그린란드로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아내에게 말했다. “이렇게  이상 이번 여름엔 세비야로 간다. 아저씨께 깊게 사과하고, 참이슬   선물하고, 까나리아 제도 구경하고 카사블랑카 찍고 올게” “어이구 그러세요 서방님 ㅋㅋ

네 왕들이 영원히 운구(?!)중인, 보다 정확히는 내려놓지 않고 띄운 상태의, 콜럼부스의 관. 내 긴 리스트의 한 줄을 여기서 지우다. (C) Kang Sunghun, 2022
작가의 이전글 조지아-러시아 국경의 어느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