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gamino - Hideyuki Hashimoto
무슨 말을 들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날
조용히 들리는 진동 소리에도 눈물이 흐르던 날
어떤 것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없었다.
말라비틀어져버린 시래기처럼
환풍기에 맺혀있는 기름방울들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있다는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걸 알릴 뿐이다.
대화할 때 눈빛 교환만으로도 힘들어 바닥을 보게 되고
말 한마디라도 더 들을까 봐 귀를 닫게 되고
따스한 손길이 옷깃이라도 스칠까 멀리 도망가기 바빴다.
상처는 상처로 치유되거나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회복된다는데
내 상처는 시간이 흐를수록 썩어 문 들어지고 있다.
아무리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커피 자국처럼
아픈 사람이라는 주홍글씨에 묻혀
나 자신도 나를 버리고 자연스레 그 틀에 맞춰지고 있었다.
소금 속 간수가 빠지듯
마음속 무언가가 빠져나와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을 만큼 공허함 느껴졌다.
남들처럼 조금만 더 자신감 있고 단단했다면
조그마한 살랑바람에도 날려가지 않을 텐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개화하지도 못한 채 바람에 날려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진 꽃처럼
진흙 속에 묻혀 빛도 못 보고 썩어가는 꽃잎처럼
감정 소비에 지쳐 모든 걸 포기하고 늪에 몸을 맡겼다.
어떻게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눈물 흘리는 것뿐이니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하고 진흙 속에 묻힌 꽃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