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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Mar 26. 2023

드디어 코로나에 걸렸다.

호주 일상 이야기 

코로나가 감기처럼 취급되는 상황에 접어들 때쯤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퇴근 후 갑자기 두통이 심하게 오더니 그날 새벽 앓아누웠다. 아프면 다 똑같지라고 생각했는데 감기와 증상은 비슷하지만 다른 느낌이었다. 

갑자기 숨이 탁 막혀 죽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코로나에 걸린 건 다음날 아침 테스트를 보고 나서였다. 제발 두줄이 아니길 빌었는데 너무나도 선명한 두줄이었다. 내 인생에 첫 빨간색 두 줄이었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회사에 전화할 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작아졌다. 


일주일 동안 집에서 잠만 잤다. 사람이 하루에 이렇게 오랫동안 잘 수 있다는 걸 오랜만에 느꼈다. 아침에 일어나 약 먹고 잠들고, 점심에 일어나 밥 먹고 잠들고, 저녁에 약 먹고 잠들었다. 오래 자면 피부라도 좋아진다는데 이제는 피부도 예전 같지 않아서 오래 자도 생기를 찾아볼 수 없다. 


이제는 코로나에 걸려도 지원금조차 나오지 않는 시기에 걸려서 일하지 못한 돈을 어떻게 메꿔야 할지 고민이다. 이게 외노자의 삶이란 걸까? 주변에서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는 분들이 많았다. 

저도 이제 코로나가 사라지는 줄 알았는데 그 마지막 발악에 제가 걸렸습니다. 



미각이 돌아올 때쯤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서 한인 마트에서 사두었던 꽁치 통조림을 꺼냈다. 아껴먹으려고 선반 구석에 숨겨두었는데 이제야 꺼냈다.  김치를 열심히 볶고 나서 물 그리고 꽁치를 넣고 보글보글 끓기만 기다리면 되는데 그새를 못 참고 약기운에 취해 잠시 잠들어버렸다. 


정말 아주 잠깐 잠들었다 생각했는데 자욱한 연기에 소스라치게 놀라 주방으로 달려갔다. 사고는 정말 방심하는 순간 한 번에 생긴다더니.  온 집 창문을 다 열고 박스로 집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연기를 빼내느라 고생했다. 어느 정도 연기가 빠지고 나서야 냄비를 봤는데 바닥이 다 그을려져 있었다. 


담배를 많이 피우면 간이 저렇게 검고 딱딱해질까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거실에 식탁에 앉아 잠시 숨 돌릴 틈 없이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몸뚱이는 정말 양심도 없는지 이 상황에 잠이 오다니.

스트레스받을 새도 없이 주변 정리 후 다시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몇 시인지 확인하기도 귀찮을 정도로 잠을 오래 자다 보니 이제는 해 떠있을 때, 달 떠있을 때 시각적으로 확인 가능한 것들로만 판단하게 된다. 아직 해가 떠있으니 해가 지기 전에 동네 한 바퀴라도 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은 평화로웠다. 내가 치른 전쟁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고요했다. 


이국적인 주택가를 걸으면 내가 아직 호주에 있다는 걸 실감한다. 노래 없는 가사들을 들으며 그동안 쌓여왔던 짜증과 설움을 달래며 거리를 걷는다.  빨리 코로나가 났길 바라며. 



왼쪽 : 코로나 테스트 / 중간 : 사건의 지평선 / 오른쪽 :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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