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글씨클럽: 손모가지 걸고 글쓰는 클럽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사람에 따라 결정되진 않지만 해 온 일에 따라 결정되긴 한다. 평생을 매장에서 일한 사람을 숫자만 봐야하는 팀에 턱하니 앉혀다 놓고 고과는 계속 바닥을 깔아가며 월급마저 적게 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몇 번이고 부서 발령 요청을 해봐도 묵묵부답. 영애는 근무시간 내내 자포자기한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노조때문이라고 했다. 민주노총 가입을 시도한 노조가 회사에 의해 모두 물갈이가 됐다. 그야 말로 회사를 위한 허울뿐인 노조가 되면서 기존 노조 입장을 대변했던 직원들은 황당한 발령을 받았다. 그럼에도 항의할 수 없었던건 노조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더이상 노동자가 아닌 사측에 의한 노조만 남게 되었고, 기존 노조에서 목소리를 냈던 직원들은 기피 대상, 암묵적 징계 대상이 되었다. AI 가 글도 써주는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년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그런일이 가능했을까. 영애가 한 건 자신의 마땅한 권리를 요구한 것 뿐인데 그를 지켜준건 아무도 없었다. 그는 노모와 살면서 가장 역할을 한다고 했다. 오빠가 하나 있는데 형편이 좋지 못한 모양이였다. 미스터트롯에 나온 누군가를 열렬히 애정한다며 그 얘기를 할 때 빼고 그는 늘 슬픈 등을 하고 앉아있었다.
면세점에는 다양한 공간이 존재한다. 일반 손님이라면 명품 브랜드가 빼곡한 매장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외국인 고객을 동반한 가이드를 위한 휴게실, 환전실, 보세실 등등 드러나 있지 않은 공간들이 많다. 면세점은 보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면세품들은 보관되는 곳도 일반 창고가 아니라 보세 창고라 불린다. 그곳에는 물건들을 위해 사람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면적은 물건이 차지하고 한 귀퉁이에 작게 사무실이 자리잡고 있다. 물건의 발자취를 따라 발생하는 모든 먼지와 소음을 참으며, 그곳에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철구는 늘 슬픈 얼굴을 하고있었다. 그는 원래 샤넬 등의 명품 브랜드를 담당하는 바이어였는데, 거래처로부터 뒷 돈을 받았다는 설 등등 여러 소문과 함께 보세 창고로 발령을 받았다. 바이어 일을 할 때도 보세 창고에서도 그는 자리에 잘 없었다. 어디를 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자리를 비운 그를 적극적으로 찾는 사람도 잘 없었다. 세상의 모든 시름을 다 가진 얼굴을 했는데 실제로도 그는 입만 열면 그의 고달픈 인생에 대해 조근조근 나긋나긋 잘 이야기하곤 했다. 애가 둘인데 가진게 빚 뿐이라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바이어로 복귀하게 된다. 그런데 철구는 달라진건 없다는 듯 똑같이 슬픈 얼굴을 하고 회사에 왔다. 그리고 영애와 같은 슬픈 등을 하고 앉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