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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Jun 12. 2023

문자 너머의 지혜를 찾아가는 읽기




알리바바가 동굴 문을 열 수 있었던 것은 옳은 단어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생각들, 문장들, 사실들 자체가 친구가 되어준다.”

- p.117,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리베카 솔닛



 리베카 솔닛의 유려한 문장을 읽을 때 나는 한창 문장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지속 가능한 일과 삶을 고민하는 여성들의 커뮤니티 “창고살롱”에서 멤버들의 대화를 기록하고 주옥같은 문장을 길어 올려 ‘레퍼런서의 말’을 아카이빙 하던 중이었다. 많은 양의 텍스트를 문자 그대로 그저 ‘읽기'에 불과하던 내가 문장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건 큰 수확이었다. 글 전체 내용을 파악하기 전에 문장을 충분히 곱씹어 보고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문자의 의미가 전과는 다르게 다가오는 경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옳은 단어를 안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어떤 생각과 감정을 옳은 단어를 사용해 표현한 문장을 보았을 때, 혹은 생각지도 못했던 문장과 단어를 발견했을 때의 환희를 기억한다. 한동안 그것에 흠뻑 빠져 책에서 문장을 발견할 때,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문장을 들었을 때, 그 문장의 힘에 대해 생각하며 감탄하고 감동했다. 


 그 문장들은 마치 성서의 말씀처럼 신성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힘들고 지친 일상에서 떠올리면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 주었다. 주변에서 추천하고 회자되는 책은 너무 많았고, 읽을 글이 넘쳐났다. 나는 닥치는 대로 무조건 읽었고, 읽을 때마다 새롭고 좋은 문장을 발견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에게 남는 단어와 문장들은 비슷비슷해졌고, 어떤 때에는 분명 읽었는데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 책 나도 읽었다’는 사실과 ‘좋았다’는 감상만이 남았다.

 그렇게 욕망 가득한 읽기를 계속해 나가면서 책 속 문장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 믿음, 문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박혜윤 작가의 <도시인의 월든>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책에서 즐거움을 얻고 배움을 얻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책과 문자는 내가 세상을 스스로 바라보는 수단이어야 하지 내가 복종하는 절대적인 무엇이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나는 보지 못해도 나와는 다른 사람들은 보고 있는 이 세상의 풍요를 포착할 수 있다.”     

-p.20, <도시인의 월든>, 박혜윤



 이 문장을 몇 번이고 곱씹어 보면서 나는 지금까지 맹목적인 읽기를 하고 있었고 ‘내가 복종하는   절대적인 무엇’을 찾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많이   읽고 싶고 많이 알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무조건 읽었고 무조건 믿었고 무조건 쫓았다. 나의   읽기에는 사유하는 과정과 읽은 것을 나만의 언어로 만드는 과정이 빠져있었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것을 보고 읽어도 그 끝에는 공허한 감상만이 남았다.
   
   최근에 홀딱 빠져서 듣고 있는 여성학자 정희진 선생님의 팟캐스트 <공부>에서 책을 잘 읽는 방법을 소개하며 비판적 읽기를 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책 내용에 대해 무조건적인 수용을 하지 말고 나의 인식 체계에서 한 번 거르고 생각해 보는 과정을 거치라는   말로 이해했다. 나의 읽기에서 생략되었던 부분이 바로 그 과정이었다. 문자 자체만 보고 그 너머의 지혜를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재미있는 건 이런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책을 읽으면서 가능했다는 것이다. 읽고자   하는 욕망 그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그것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읽겠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인식하고   사유하고 나만의 언어를 만드는 과정을 거치며 계속 나아가 볼 작정이다.


나는 보지 못해도 나와는 다른 사람들은 보고 있는 이 세상의 풍요를 포착할 수 있을 때까지.’




본 콘텐츠는 창고살롱과 공동 기획, 편집하여 유료서비스 <레퍼런서의 글> 구독 콘텐츠 서비스로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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