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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Jun 12. 2023

TV와 가정주부




혹시 여자들이 슈퍼마켓에 후딱 갔다 오겠다고 말하는 거 들어본 적 있어요? 슬렁슬렁 갔다 오겠다고는 하지 않죠. 제가 하고픈 말이 바로 이건데요. 주부들은 언제나 정신이 돌아버릴 지경으로 대단한 생산성을 발휘하며 살아가요.”-p.340, < 레슨 인 케미스트리>, 보니 가머스



 요리를 화학으로 풀어내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여성의 잠재력을 일깨워주는 엘리자베스의 삶을 그린 책 <레슨 인 케미스트리>는 용기와 지혜를 일깨워주는 멋진 문장들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유독 이 문장에서 눈을 떼지 못한 것은, 인정과 위로 그것을 넘어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성’은 가정주부에겐 해당하지 않는 말이다. ‘언제나 정신이 돌아버릴 지경으로 대단한 생산성을 발휘하며’ 살아가지만, 그 노동이 제대로 된 인정을 받은 적이 없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욕실, 반짝이는 싱크대, 늘 정돈된 집안 곳곳의 이면에는 그 어떤 일보다 치열한 노동이 있음을 나도 가정주부가 되어보기 전에는 몰랐다. 거기에 육아와 자녀교육까지 더해지면 신경질적이거나 우울하거나 둘 중 하나의 상태가 된다.
       
 살면서 한 번도 내 직업이 ‘주부’가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여성이라는 약자성을 개인의 노력과 열정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회사에 다녔는데 그 오만함을 나 스스로 입증했다. 코로나에 아이 돌봄을 위해 무작정 퇴사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내게 ‘아깝다’고 했고, 얼마 안 있어 못 배기고 나와 일을 할 것이라고 멋대로 장담했다.


 어느덧 4년 차 가정주부, 전업맘으로 살면서 가사노동과 돌봄의 가치에 대해 먼저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구조와 시스템에서 경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림자 노동을 비판한다. 하고 싶었던 일들을 조금씩 해나가며, 자본주의가 말하는 생산과 효율성이라는 대열에 속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런데도 나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 앞에서는 기가 죽고, 출근하기 싫다며 부러운 듯 나를 바라보는 남편 앞에 당당하지 못하고, ‘엄마는 회사 안 가잖아.’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괜스레 화가 난다. 명함도 소속도 없는 일을 하루 종일 하면서, 진짜 일, 돈을 버는 일을 해야 한다는 조급함에서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TV 앞에 앉은 여자


 저녁이 되면 엄마는 늘 TV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밖에 나가 하루 종일 씨름하고 들어왔는데 엄마는 여유가 넘쳤다. 엄마도 분명 온갖 집안일 끝에 맞이한 얼마 안 되는 휴식 시간이었을 텐데 그때 나는 몰랐다. 집에만 있는 엄마가 못마땅했다. 뭐가 그리 재밌다고 TV를 저렇게 보냐고 타박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제대로 된 외출이 힘들었던 시기, TV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아이와 남편 외에 가장 많이 본 사람 얼굴은 TV에 나오는 연예인이었다. 그러자 TV 채널을 돌리다가 자주 본 연예인이 나오면 실제로 만난 것도 아닌데 그 누구보다 반갑고 친근했다. 엄마가 연예인을 오랜 친구마냥 반가워하는 마음을 그제야 이해했다. 하루 종일 하는 대화는 말 못 하는 갓난아기에게 하는 일방적인 말이 대부분이었고, 남편이 퇴근해 집에 오면 지친 몸을 이끌고 몇 마디 나누는 게 전부였다. 밤이 되면 지쳐 자는 날이 더 많긴 했지만, 가끔 TV를 보면 그 어떤 때보다 재미있는 거다. 그때 알았다. 엄마에게 TV가 어떤 의미였는지, 주부들이 왜 TV를 보는지 말이다. TV는 집을 돌보느라 단절된 세상과의 소통 창구, 정신이 돌아버리지 않게 잠시 숨통을 트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의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6시의 저녁 식사’라는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면서 늘 같은 멘트를 한다. “얘들아, 상을 차려라. 너희 어머니는 이제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한다.” 어머니는 자기만의 시간에 TV를 볼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술 한잔을 걸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을 하던 어머니들에게 자기만의 시간이 보장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매일 저녁 TV 앞에 앉은 엄마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묵묵히 엄마의 시간을 응원해 주고 싶다.





본 콘텐츠는 창고살롱과 공동 기획, 편집하여 유료서비스 <레퍼런서의 글> 구독 콘텐츠 서비스로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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