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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Jun 12. 2023

어린이와 함께 사는 세계




어딘가 좀 할머니 같은 말이지만, 나는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 p.41,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사계절




 ‘다시 태어나면 애는 절대 안 낳아야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생각했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 내가 사는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해외로 잦은 출장과 여행을 다녔는데, 임신한 이후로 한 번도 해외를 나갈 기회를 갖지 못했다. 우스갯소리로 ‘난 이제 모닝캄마저 아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남편에게 푸념하곤 했다. 코로나가 점차 완화되며 해외 출장을 준비하는 남편 옆에서 오랜만에 여권을 들추어 보았는데 여권마저 유효기간이 만료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여간 고달픈 일이 아니다. 개인적인 커리어도, 일상생활도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은데 사회 환경 또한 너무나 열악하다. 유모차를 직접 끌어보기 전엔 거리의 보도블록이 얼마나 울퉁불퉁한지, 가게의 문턱이 이토록 높은지, 온전히 걸을 수 없는 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도 한때 어린이였고, 아이를 낳기 전에도 주변 어린이와 늘 함께 살아왔는데 타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유모차를 동반하며 겪는 불편함은 아이가 온전히 잘 걸을 수 있을 때까지만 참고 견디면 어찌저찌 끝난다. 그런데, 어린이라는 약자이자 소수자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늘 불편하다. 2017년 인권위가 ‘노키즈존’ 운영이 아동에 대한 차별이라고 판단했지만, 노키즈존은 버젓이 존재한다. 신문에서부터 지인들의 SNS까지 ‘주린이, 코린이, 캠린이’ 등 미숙하다는 의미로 ‘~린이’를 붙여서 쓰는 말에는 차별과 혐오가 담겨있다. 어린이는 어린아이를 대접하거나 격식을 갖추어 이르는 말이다. ‘~린이’의 시작이 ‘로린이*’ 라는 것을 생각하면 식겁할 일이다.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 집 어린이를 어른과 동일한 사회 구성원 중 한 명으로 타자화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그의 글이 더 반갑고 감사한 이유는 직접 아이를 낳고 키우지 않았음에도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어린이를 위한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김소영 작가가 어린이를 대하는 시선에는 배울 점이 참 많다.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기에’ 어린이들의 겉옷 시중을 들고, 플라스틱이 아닌 도자기 찻잔에 마실 것을 대접한다. 무엇보다 어린이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한다.


 우리 집에 사는 어린이는 어느덧 일곱 살이 되었다. 우리는 함께 유모차를 타고 울퉁불퉁한 도로를 걷는 시간을 보냈고, 카페나 식당에서 외식할 때면 ‘맘충’ 소리가 무서워 앉은 자리를 박박 닦고 나왔다. 사람이 많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자리를 양보받기란 불가능했고, 건물을 오갈 때 앞선 사람이 문을 잡아주는 경우 또한 정말 드물었다. 노키즈존을 예상치 못하고 방문한 카페나 미술관에선 허탈하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나 또한 어린이와 함께 여성이라는 약자, 소수자의 입장이 되어보면서 나는 그동안 다른 약자, 소수자를 어떤 시선으로 대했는지 생각해 보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코로나가 극심했던 작년 봄, 우리 집 어린이와 함께 지하철을 탔다. 열차를 이용할 때 차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객차 내의 그 누구도 개의치 않았지만, 내 손을 잡고 있던 어린이는 그 말을 듣자마자 원래도 잘 쓰고 있던 마스크를 한 번 더 올려 썼다. 

어린이는 그런 존재다. 정해진 규칙을 잘 지키려고 애쓰고, 선의를 위해 힘쓰고, 사심 없이 세상을 대한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어린이들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것일까.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니는 우리 집 어린이는 집에서는 물론 기관에서도 선생님과 친구들의 양육자에게 평어를 사용한다. 그럼에도 우연히 만나게 되는 어른들이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면 똑같이 ‘안녕하세요.’라고 존대할 줄 안다. 부디 어린이들이 환대받는 존재가 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환대받고 자란 어린이들은 타인을 환대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를 환대하는 세상에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로린이 : 로리+어린이. 여자 어린이를 성적 대상화하여 지칭하는 분명한 소아성애적 표현





본 콘텐츠는 창고살롱과 공동 기획, 편집하여 유료서비스 <레퍼런서의 글> 구독 콘텐츠 서비스로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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