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영 May 14. 2020

질문하면 자존감도 올라갑니다.

큰애가 8살, 둘째가 6살이 되면서 아이들 사이의 관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형을 역할모델이자 경쟁자로 삼은 둘째는 심심찮게 형을 도발합니다. 여간해서는 멈출 줄 모르는 동생의 장난과 도발에 그렇지 않아도 예민한 첫째는 까칠하게 반응하곤 합니다. 우선 짜증이 잔뜩 섞인 고성이 오가고, 서로 엄마에게 자신의 피해를 주장하며 상대를 응징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해오죠. 큰애는 큰애대로, 둘째는 둘째대로 나름의 사정과 이유가 있기 나름이니 집안에서 발생하는 소요사태 덕분에 옅어져도 시원찮을 엄마 미간의 주름이 더 깊어만 갑니다. 엄마는 판사가 아니니까요. 지혜로운 판결로 유명한 솔로몬은 더더욱 아니구요. 게다가 큰 소리가 오가는 문제가 생기면 잘못은 둘 모두에게 있기 마련인데, 그 둘이 다 내 자식이다 보니 마음이 이중으로 불편한 거죠.  

    

장난기로 형을 도발하는 둘째에 짜증을 내며 반응하는 첫째의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자신의 장난에 형이 반응하면 더 약 올리는 동생을 참다못해 한 대 치기라도 하면 엄마한테 폭력을 행사했다고 혼나는 큰아이였습니다. 큰아이에게 문제 상황에서 짜증 내는 방식 말고 다르게 반응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우리 아이 자존감의 비밀>로 잘 알려진 하버드대 교육학과 조세핀 킴 교수는 아이가 문제의 도움을 청했을 때 가장 좋은 대처방법은 작은 힌트를 제시하는 거라고 말합니다. 직접적으로 답을 제시하는 대신 힌트를 줘서 아이가 문제를 직접 해결하도록 할 때, 아이들의 문제 해결능력이 활성화 되고 결국 문제를 해결해낸 성취감으로 아이의 자존감도 올라간다는 거죠.      


조세핀 교수가 제시하는 작은 힌트는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이런 질문들이 아이들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힌트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이 방법을 선택하면 어떤 점이 좋아?”

“이렇게 하면 원치 않는 결과는 생기지 않을까?”

“네 생각엔 어떤 결과가 더 나아 보이니?”

“넌 어떤 선택을 할래?”     

큰아이에게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평아, 요즘 명이가 평이에게 장난을 많이 치지?”

“응. 쫌 그렇지.”

“그래 명이가 장난 칠 때 평이가 그만하라고 하면 명이가 멈춰주면 좋은데 그렇지 않은 것 같더라. 그럴 때 기분이 어땠어?”

“기분 안 좋아. 하지 말라는데 자꾸 하잖아.”

그 상황이 기억나기라도 하듯 아이의 눈썹이 찡그려집니다. 

“맞아 엄마라도 그럴 거야. 그런데 평아, 엄마가 보니까 너는 명이 장난이 싫어서 짜증도 나고 화도 나고 기분이 나쁜데, 명이는 정작 장난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재미있어 하더라. 물론 명이가 평이를 약 올리는 건 잘못하는 행동이야. 엄마가 명이한테 하지 말라고도 하잖아 그치?”     

자기는 기분 나쁜데 동생은 재미있어하더라는 엄마의 지적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동생의 잘못을 지적하자 격한 공감을 보였죠. 

“그런데 평아, 명이가 잘못하는 거긴 하지만, 명이가 너한테 장난을 칠 때 짜증 내는 방법 말고 다르게 반응할 수 없을까?”

아이가 항변합니다.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그러잖아.”

“맞아. 그래서 네가 화가 나는 거, 엄마가 이해하지. 그런데 짜증 내서 좋은 점은 뭐야? 짜증을 낸다고 명이가 장난을 그만두지는 않지? 엄마가 보니까 평이만 기분 나빠지는 것 같던데 어땠어?”     

큰아이는 계속 답답한 표정을 지었지만, 엄마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긴 표정이었습니다. 

“짜증을 내서 결과가 나아지는 게 없다면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말이야, 명이나 다른 아이들이 평이 의견을 존중해주지 않을 때, 짜증 내지 않고 다르게 반응하면 어때?”

한숨 쉬고 다시 물었습니다. 

“평이가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까?”

“하지 말라고 해도 자꾸 장난치고 못살게 구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야?”


아이도 어지간히 스트레스받았나 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이의 당혹스러움이 눈빛에 그득합니다. 얼른 이렇게 해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꾹 눌렀습니다. 사리라는 게 정말 몸에서 생긴다면, 엄마라는 극한 역할은 사리 생산에 가장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답을 말해주는 대신 질문을 던져 힌트를 주기로 원칙을 세우지 않았다면 참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규칙을 세워보면 어떨까? 장난치지 말라고 표현을 분명히 하는 거야. 두 번까지 참고 말해보는 거지.”

“그래도 안 들으면?”

“두 번 말했는데도 동생이 네 말을 듣지 않으면 그땐 엄마한테 와서 중재해 달라고 말하면 어떨까? 네가 동생을 때리거나 소리를 지르는 대신 말이야. 어떤 선택이 더 나아 보이니?”     

아이는 진지했습니다. 

“알았어. 그런데 명이가 말을 들을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동생이 형의 말을 잘 들었을까요? 형은 어땠을까요? 짜증 내고 동생을 때리는 대신 차분히 타일렀을까요? 모든 일이 그렇듯 변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랍니다. 엄마는 파트타임 판사 역할을 수행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내 뜻대로 주변 사람이 반응하지 않을 때 짜증 내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반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큰아이에게 묻고 있지요.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큰아이에게 다른 선택은 없을지 물어본 질문이 아이의 마음에 새겨졌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막힌 길이 아니라 더 나은 선택지가 있는 열린 길이라는 걸 질문을 통해 아이가 배웠다고 말입니다. 형제의 난을 정리해줄 명쾌한 해답은 아직 요원해 보이지만 문제 상황에 더 나은 답을 찾고자 질문하는 태도가 아이들 마음밭에 심어졌다고 확신합니다. 질문하는 습관의 씨앗이 싹트고 자라면서 아이들의 문제해결 능력도 자라날 겁니다.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구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아이들의 자존감은 더욱 견고해질 겁니다. 그러니 계속 질문해야 합니다. 질문으로 아이들의 성장을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장수풍뎅이가 행복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