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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피 Mar 25. 2024

저는 제 허리는 못 고치는 도수치료사입니다.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딱 제 이야기입니다.


네, 저는 남의 허리는 고쳐도, 제 허리는 못 고치는 도수치료사입니다.


저는 아주 건강한 몸을 타고 났습니다. 감기나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가본 적은 있지만, 정형외과는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뼈도 한 번 부러진 적이 없었으니까요. 성인이 되고 처음 정형외과에 갔는데 진료를 보러 간 게 아니라 일하기 위해 갔을 정도로 건강했습니다.


영원히 튼튼할 줄 알았던 제 허리는 30대가 되면서 슬슬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좀 무리했나. 허리가 뻐근하네.' 감기처럼 쉬면 지나갈 줄 알았던 허리 통증이 심해진 건, 3년 전 어느 날입니다.


무거운 상자를 옮기다가 허리에서 뜨끔하는 느낌과 함께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습니다. 양말을 신기 위해 심호흡을 해야 했고, 화장실에서 뒷처리를 하려면 식은땀이 줄줄 흐를 정도였습니다. 의자에서 일어날 때면 온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아, 무리했나 보다. 며칠 쉬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통증은 그대로 였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겠다.' 찜질부터 스트레칭, 마사지, 물리치료까지 해도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 진통제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제서야 환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통증이 지속 될수록 '아, 이거 심각한건가? 더 심해지면 어쩌지?' 두려움은 커졌고, 삶의 질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찌릿하는 통증이 느껴질 때는 순간 짜증이 치솟아서 정신마저 피폐해졌습니다. 그러다 겨우 마음의 평화를 되찾으면 우울감이 몰려오고 다시 움직이다 움찔하면 짜증이 치솟고. 


제가 아프기 전까지는 환자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오만한 마음으로 거짓 공감으로 환자를 위로해왔던 겁니다.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픔을 압니다.



결국 제 발로 다른 병원을 찾아가 검사도 받고 도수치료를 받게 됩니다. 처음으로 '진짜 환자'로 치료를 받아본 겁니다.


치료를 받고 나니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통증을 다시 느꼈습니다. 좋아지는듯 싶다가 다시 아프니 절망감마저 들었습니다. '아, 이거 진짜 단단히 잘못됐구나.'


다행히도 2주 정도 지나자 통증이 서서히 줄어들었습니다. 이때부터 혼자서 적용해 볼 수 있는 도수치료를 해보았습니다. 각종 스트레칭, 마사지를 하니 증상은 더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떤 행동을 해서 좋아졌다기 보다는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좋아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결론을 내린 이유는 처음 허리가 아팠을 때도 같은 방법을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환자들에게 효과가 있었던 방법을 그대로 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병원을 찾아간 겁니다.


왜 똑같은 치료를 해도 누구는 좋아지고, 누구는 효과가 없는걸까?



사실 이런 의문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날, 같은 증상으로 찾아온 두 분의 환자가 있었습니다. 두 분은 똑같이 허리를 숙일 때 '아, 아' 하며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같은 치료를, 같은 시간 동안 적용했습니다. A 환자는 치료가 끝나고 통증없이 허리를 숙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B 환자는 여전히 '아, 아' 하며 허리를 숙이기 어려워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수록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는 신이 아니고, 실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난 게 아니기 때문에 모든 통증을 고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하지만 열심히 연습하고 공부를 했는데도 제 몸 하나 못 고친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점점 치료에 대한 자신을 잃어갔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해 온 치료를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통증이 좋아진 환자들은 플라시보 효과였던 걸까?' 라는 생각에 괴로웠습니다. 치료사를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통증에 관련된 책을 발견했습니다. 영국 왕립 의학 협회에서 통증 분야 논문상을 수상한 몬티 라이먼 박사의 "고통의 비밀"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그는 책에서 "통증은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반응이다." 또한 "통증이 줄어드는 것은 몸이 치유된 직접적 결과가 아니라 몸이 치유되고 있거나 통증을 일으키는 자극이 제거되었다고 뇌가 인식하는 과정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 책을 읽은 이후 제가 지금까지 해온 치료 방식을 뒤집어 엎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풀리지 않았던 의문의 실마리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저를 계속 괴롭히던 "왜 같은 치료를 해도 누구는 좋아지고, 누구는 그대로 일까?" 라는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동안 통증의 실체도 모르면서 가상의 적과 싸워 왔습니다. 그랬으니 결과 또한 일정하지 않았던 겁니다.

"고통의 비밀"을 시작으로 통증과 관련된 책을 섭렵하기 시작했습니다. 통증을 느끼는 '통각'은 시각, 청각, 촉각과 같은 감각입니다. 모든 감각 정보의 종착지는 뇌입니다. 자연스럽게 뇌과학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갈고 닦아온 치료와 통증 과학, 뇌과학을 접목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치료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제 허리가 아팠을 때 증상이 좋아지지 않았던 이유도 알 수 있었습니다.

치료사 중심의 치료를 했기 때문입니다. 환자의 근육과 뼈, 몸을 움직이는 건 치료사입니다. 환자는 자신의 통증에 대해 모르는채, 치료사가 움직이는 대로, 치료사의 말대로 치료를 '받기'만 합니다.

하지만 환자 중심의 치료는 다릅니다. 환자 스스로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몸 상태를 알면 자연스럽게 통증의 원인을 깨닫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알고 있으니 치료사에게 의존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더 나은 움직임을 할 수 있고 스스로 통증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제 방식이 정답이라거나 모든 통증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기존의 방식에서 똑같은 치료를 해도 효과가 다르다는 새로운 문제를 찾았고, 새로운 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분들이 통증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도해 보지도 않고 '통증은 스스로 조절할 수 없어' 라고 생각합니다. 그럴수록 병원이나 전문가에게 의존하게 되고 점점 대처 능력을 잃습니다.

저와 같은 문제를 겪는 분들을 위해 글을 다시 쓰려고 합니다. 통증이 두렵고 괴로운 분들의 삶의 질을 높여 드리고 싶습니다.


제 글을 통해 더 나은 삶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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