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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 애 May 16. 2023

03 암흑의 1주차

# 답이 없다.

 막내 출산을 앞두고, 어마어마한 계획들을 세웠었다. 두 아이들과 함께 1박2일 여행을 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따로따로 하루 데이트를 할 계획도 있었다. 그간 아이들에게 예민하게 굴었던 시간들을 조금이나마 만회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화려했던 계획은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1주차>

 당시 7살이던 첫 아이와 3살이던 둘째 아이가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었기에,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간단히 간식을 먹이고, 어린이집에 등원시켰다. 등원 후 집근처에 산후조리원이 있었기에, 바로 조리원으로 향했다. 무슨 정신으로 그 길을 오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돌이켜보건데 날은 좋았던 것 같다. 우산을 쓰고 갔던 기억이 거의 없었고, 5월이었기에 더 없이 푸른 하늘과 따스한 날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눈엔 온통 잿빛이었고, 좋은 날씨가 내겐 더 아픔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들어갈지, 아내에게 어떤 말을 해야하고, 아이는 어떻게 보아야 할지, 수 많은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새 아내가 있는 방 문 앞이었다. 하지만 막상 방에 들어가면,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며, 가슴은 답답하고 호흡은 막히고, 여기저기 아팠다. 아내는 평소에 겪어보지 않은 등원준비에 힘들었겠다며 침대에 누워 쉬라 했지만, 내 몸을 내가 어떻게 가눠야 할지 모를 정도로, 어떤 자세도 취할 수 없었다. 침대에 누울 수도 없고,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그나마 가장 편한 자세는 바닥에 무릎꿇고 침대에 엎드려 있는 자세였다. 


 그렇게 호흡을 가다듬고, 시간을 보내다가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를 안고 기도했다.

"주님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정상판정 나오게 해주세요."


 조리원에서 오전시간을 보내고, 점심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자리에 누워있었다. 조리원에서 엎드려 있으면서 몸을 진정시키고 나면, 집에 와선 그나마 누울 수 있을 정도까지는 되었다. 그러다 괴로워 울다가, 지쳐서 잠깐 자다, 깨서 또 울다가... 또 쓰러져 있다가.. 반복하다보면, 어느덧 아이들 하원시간이 되었다.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하원시킬 때면 선생님들이 엄마와 아이에 대해 안부를 묻곤 했다.

 어색한 미소로 "네" 라고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한 채 간단히 답하고 나서 바로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아이들 가방 정리를 하고, 간식을 준비해주고, 집안일을 잠깐 하고, 저녁을 먹이고, 또 뒷정리를 하고, 씻기고, 재울 준비와 내일 등원준비를 하고 나서, 기도하고, 자리에 누웠다. 그나마 아이들이 하원하고 집에 왔을 땐, 해야할 일들이 있었기에,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움직였다. 


 아이들을 재우나면, 또 울다가, 자다가, 깨서 또 울다가, 자다가를 반복했다. 


 그 주 토요일 아침, 첫째 아이를 금요일인 전날 친구 집(아이의 친구가 있기도 한)에서 맡아준 덕분에 둘째 아이와 단 둘이 아침을 맞이했다. 첫째 아이가 토요일에 스케줄이 있어서, 아침부터 움직였어야 했는데, 주변의 도움으로 조금 편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전날 교회에서 부르짖으며 기도하고, 새벽에도 울다 깨다를 반복해서였을 까.. 늦게 일어났다. 둘째 아이가 먼저 일어나 나를 깨웠다. 그런데,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이를 도저히 케어할 수 없어서, 먼저 티비를 틀어주었다. 온 몸에 힘이 없어 일어날 수 없어 잠시 누워있으며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가 티비를 보는 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또 한참을 울었다. 아이의 눈은 아예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소리내면 티비보다 혹시나 나를 쳐다볼까, 아픈 몸을 붙잡고 조용히 눈물만 훔쳤다. 아무것도 모르는 둘째 아이는 내게 기대 티비를 볼 뿐이었다. 그러다 웃는 소리가 들릴땐 마음이 더 아파왔다.


 한 주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지났다. 그저 고통의 연속이었다. 매일 눈물로 시작해 눈물로 마무리 했다.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온몸에 박힌 가시만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시가 더 나를 깊숙하게 파고드는 것 같았다. 몸을 어떻게 가눌 수도 없었고, 온몸이 아팠다. 사람들의 눈을 바라볼 수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두 아이가 없었더라면, 극단의 선택을 했을 것 같다. 천진난만한 두 딸이 나를 살렸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두 딸이 나를 살게 했다. 


 그 주 토요일은 내 생일이었다. 조용히 지나가고 싶었다. 아내는 내게 조리원에 있어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다며 연신 미안해했다. 생일이 중요하지 않았다. 생일인 것 자체가 미안했다. 원망스러웠고 괴로웠다. 지인들이 괴로워하며 아파하고 있을 내게 갑자기 찾아와 생일 케익을 전해주기도 하고, 선물을 건네주기도 했다. 그 선물을 붙잡고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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