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민기 선생을 추모하며
노래를 불러 본 지가 오래되었다. 결코 잘하지는 못하지만, 좋아하는 노래를 듣다 흥얼거리기도 하고, 코드 몇 개 아는 실력으로 기타를 뚱땅거리거나, 노래방 좋아하는 친구가 이끌면 마다하지도 않던 내가 노래를 안 한 지가 벌써 8년이다.
계기가 된 건 목감기로 인한 성대 손상 때문이었다. 감기 투병 중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다가 (사이트 작업에 대해 궁금한 게 많으신 수녀님들의 질문에 너무 친절히 대응하다가) 갑자기 목소리가 안 나오게 된 것이다. 그때의 당혹스러움과 암담함이란! 이전 목소리를 다시 찾지 못할 수 있다는 의사의 경고에, 남은 생을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치료는 잘 진행되었고 두어 달간의 의도치 않은 묵언 수행! 끝에 목소리를 다시 찾았지만, 목에 무리가 되는 일은 극히 피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노래 부르기였다. 이후로 노래를 꼭 불러야 할 상황도 생기지 않았으며 내 작은 기타도 케이스에서 나온 적이 없다.
김민기 선생의 부고를 들은 이후로 5일째 그의 노래를 듣고 있다. 오늘도 늦은 퇴근길에 이어폰을 끼고 <내 나라 내 겨레>를 들으며 걷다가, 깊이 울리는 그 저음의 목소리를 따라 흥얼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노래가 나오는 게 신기했다. 짧지 않은 세월 수없이 듣고 불렀던 노래여서인지 가사도 막힘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그의 많은 노래들이 그랬다. 대학 캠퍼스나 거리에서 빠짐없이 울려 퍼지던 “아침 이슬”, “상록수”, “내 나라 내 겨레”같은 노래 외에도,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던 무슨 무슨 복사본 테이프와 <공장의 불빛>과 <아빠 얼굴 예쁘네요>,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수록된 그의 모든 노래를 사랑했다. 대학 때 나의 18번은 “이 세상 어딘가에”나 “날개만 있다면”, “봉우리” 등이었고, 내 평생 가장 많이 듣고 불렀던 노래는 단연 그가 만들고 불렀던 것들이었다. 모두가 가슴 뛰고 눈물겨운, 아름다운 노래들이었다.
그의 부음을 듣고 그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있다가, 아주 오래전 대학로에서 우연히 보았던, 홀로 술잔을 기울이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시간을 방해할 용기가 나지 않아, 가슴 뛰는 팬심에도 불구하고 인사도 건네지 못한 어린 시절의 일이다. 그때 용기를 내서 그와 눈을 맞추고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면, 그 깊은 목소리의 울림에 전도 혹은 감전되어, 아주 아주 조금은 덜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비겁하고도 심히 무용한 생각.
김민기. 너무도 아름다운 사람. 단연코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문화예술인.
오늘의 우리가 누리는 너무나 많은 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당신의 그 지독히도 치열했던 삶을 통해 이뤄진 것임을...
그가 떠나고, 그를 추모하며, 나는 다시 그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김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