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하 Aug 31. 2024

시와의 관계가 소원했었습니다

다시 시집을 읽다


시와의 관계가 소원했었습니다. 
솔직히 원래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요. 

‘이런 시국에 시를?’ 하는 시대를, 한창 감수성 예민한 시기에 지나온 영향도 있을 테지만, 그보다 깊은 호흡으로 읽어내야 하는 시가 제겐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뭔가 삶의 변곡점이 필요하다 싶을 때나 그저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혹은 문득 제목이 눈에 들어오는 시집을 발견할 때 하나씩 샀던 것이 어느새 책장 한 자리는 차지하고 있었지요.  

그러다 잦은 이사로 지쳐서 책장과 그 안의 책들을 처분하기 시작하면서 고민이 좀 되었습니다. 시집의 부피와 무게가 얼마나 된다고. 이렇게나 밀도 높게 응축된 사물을, 그 부피와 무게 때문에 처분한다는 게 말이 되나? 싶어서요. 

그런 고민을 하면서 시집을 몇 권 뽑아 펼쳐보았을 때 그 안의 언어들이 얼마나 낯설어 보이던지. 내 생애에 시와는 인연이 별로 없겠다 싶은 생각이 들면서, 중고나라에 상품등록을 해버렸습니다. 책장에 꽂힌 그대로 찍은 사진을 올리고, 모두 10만 원, 이렇게요. 


누가 살까 싶었는데, 전화기에 불이 났었고, 제일 먼저 연락하셨던 분께 큰 박스의 시집을 보내고 나자 장문의 문자가 날아왔습니다. 

늦은 나이에 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귀한 시집들을 이렇게나 많이 보내주어 큰 힘이 된다고. 너무 고맙다고… 


근래에 시집이 다시 몇 권 생겼습니다. 어쩌다 마음이 동해 알라딘에서 구입한 것과, 고마운 인연들이 보내준 것들입니다. 

일을 하다, 밥을 먹다, 오며 가며 선물 받은 시집을 한 번씩 들여다보다가 문득 생각합니다.

시가, 시의 언어들이 이전보다 잘 읽히네? 왜 이리 다정하고 친근하며 울컥하지? 

시와 나 사이에 뭐가 달라진 거지? 


옐로우노트의 향수를 사용하는 분들로부터 종종 ‘내 생애에 향수를 쓰게 될 줄 몰랐다’는 말을 듣습니다.

한 번도 향수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는, 진하고 독한 (합성) 향수가 정말 싫었다는 분들(특히 남성)이 천연향을 알게 되어 고맙다고 인사를 주시기도 합니다. 

퇴근하여 천연향이 은은하게 배어 있는 공간에 들어설 때의 행복감을 전해주시거나, 향수를 선물하면서 스스로를 “행복한 향수 배달꾼” 이라 생각했다는 말을 전해 들으며, 정말 감사한 일이야, 중얼거리다 다시  생각합니다.


너무 큰 욕심이겠으나… 이런 시 같은 향수를 만들고 싶다고. 

문득, 이렇게 다정하고 친근하며 울컥하게 다가오는, 그런 향수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시집을 박스로 구매하셨던 그 분은 아직 시를 잡고 계시는지, 그렇다면 어떤 시를 쓰고 계실지 문득 궁금해지는 8월의 마지막날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그가 떠나고, 나는 다시 그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