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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지혜 Jan 06.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나는 어려서부터 학교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친구들을 좋아했고 선생님을 좋아했고 수업을 좋아했다. 물론 학교에서 왕따나 성추행 같은 폭력들도 경험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했다. 그래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교사를 꿈꿔본 적은 없다. 일단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12년 동안 매우 괴로웠고, 나는 학교보다 훨씬 더 큰 세상을 경험하며 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년 만에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왔다. 직업도 인연이 있다면 교직과 나는 필연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가서 알바를 구하니 가장 시급이 높은 것은 과외였다. 과외에서 만난 학생들은 부유하지만 마음이 아픈 경우가 많았다. 그 아이들을 진심으로 돕고 싶었고 아이들이 비록 과외 선생님이지만 나를 통해 성적이 오르고 성격이 밝아지고 삶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는 것이 큰 보람으로 느껴졌다. 부잣집 아이들에게만 내 재능을 쓰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아 곧이어 나는 매주 교육봉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만난 저소득층 아이들은 형편은 어렵지만 겸손하고 보호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지닌 예쁜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을 가르치며 오히려 내가 감사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대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미국 유학을 다녀와 교육학 교수가 되고 싶어졌다. 교육심리학 공부가 매우 재미있었고 성적도 잘 나왔다. 그래서 진로 결정을 앞두고 교환학생을 떠나 미국 사범대에서 교육학 수업을 들으며 교생실습으로 미국 초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다. 매일 새벽까지 도서관에서 교육학을 공부하는 것은 흥미롭지만 외로웠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 미국인 학생들을 만나는 시간은 나를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이후 나는 혼자 공부하는 학자의 삶보다 학생들을 매일 만나는 교사의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마침내 고등학교 국어 교사가 되었다.

  처음 기간제 교사가 되었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처럼 학생들과 나는 서로를 무척 좋아했다. 빨리 정교사가 되고 담임이 되어 아이들과 더 많은 것들을 해나가고 싶었다. 

  그 꿈은 곧 이루어졌고 기간제 교사 1년 후 나는 고등학교 정교사로 임용이 되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은 업무와 수업 준비에 금세 지치고 허덕였다. 반에서 일어나는 각종 폭력들과 자해, 자살시도들이 나를 너덜너덜하게 했다. 나에게 금방 마음을 주고 나도 예뻐하던 학생들이 내가 자기 뜻대로 해주지 않을 때면 곧바로 다음날부터 차가운 눈빛으로 인사마저 받지 않는 경험들이 한두 번씩 생겨나면서 나도 점점 더 학생들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건강하게 나를 지키며 학교에서 교사로 일할 수 있기 위해서 뭐든 무리하지 않고 적당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두 차례의 육아휴직과 복직을 거쳐 몇 번의 담임 경력과 모든 학년의 다양한 국어 교과목 수업 경력을 쌓으면서 나는 꽤 노련한 교사가 되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더 이상 매 수업 시간이 설레지 않고 아이들에 대한 기대는 줄어들고 실망감은 쌓여갔다. 특히 코로나 3년을 거치면서 학교와 학생들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붕괴되고 변화되는 듯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무기력해지고 교사들은 상처받았다. 올해 서이초 선생님 사건을 통해 얼마나 많은 교사들이 남몰래 학교에서 받은 상처들을 혼자 끙끙대며 살아가고 있었는지 드러나면서 우리는 망해가고 있는 학교를 직시하게 되었다. 내 지인들도 은근슬쩍 나에게 왜 교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지 않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학교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매번은 아니지만 아직도 종종 나는 수업에서 국어와 삶을 가르칠 때 충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내 수업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참여하고 내 수업으로 인해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학생이 있기 때문이다. 냉소적인 학생들 가운데서도 나의 진심 어린 말 한마디에 고비를 넘기는 학생이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학생들에게는 학교가 생활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학생들 중에는 학교 선생님에게 학원 선생님과 다른 기대를 품고 있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물질 만능주의, 학벌주의 시대에 입시 중심의 사교육이 최고인 것처럼 겉으로 포장되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학교에서 인생을 배워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사회의 마지막 희망은 학교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이유로 교사를 그만두고 학교를 떠나는 일이 생긴다 해도 그것은 학교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나는 코로나 팬데믹 3년을 통해 학교가 꼭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교육은 만남과 인격적 관계로 이루어진다. 물리적 환경과 분위기와 주고받는 눈빛은 쉽게 비대면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이제 걸음마 단계라고 한다. 디지털, 비대면, 인공지능, 기술 혁신 등이 모든 것을 대체할 것처럼 우리의 삶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지만 결국은 본질적인 관계, 인성, 감성, 인문학의 중요성들을 다시 찾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변화의 시대에 학교에 있어 다행인 교사로 존재하고 싶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라고 마음으로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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