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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촌개구리 Mar 12. 2024

촌개구리의 삶(5)

뇌회로가 꼬인 날

직장 다닐 때 팀장시절 매월 마감일만 되면 24시까지 미결 목표 달성한다고 팀원들과 번아웃이 될 정도로 고생했다.


어느 마감일 빡세게 야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새벽 1시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때는 운전석에 후방카메라가 없어 후진할 때 운전석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어 주차선에 차를 맞춰 주차해야 했다.


그날도 운전석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어 뒤를 보며 주차선에 차를 거의 세우는 순간 유리창 버튼을 올렸는데 미처 얼굴을 다 못 뺀 상태에서 창틀과 유리에 머리와 코가 절묘하게 끼었다.


예를 들어 밥 먹을 때 반찬을 집은 젓가락이 입으로 들어왔다가 미처 젓가락이 빠져나가기 전에 이를 악 물은 꼴이다.


머리는 창문틀에 코밑 인중은 유리에 끼어서 머리를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순간 당황하니 창문 스위치를 내리면 되는데 반대로 올리니 코는 더 꽉 끼게 되었다.


차분하게 순서를 복기하며 문제점을 찾아보면 될 텐데 사상초유의 사태에 이미 멘붕이 와서 스위치를 내리는 것을 잊어버렸다.


창피를 무릅쓰고 119를 부르려고 해도 휴대폰은 조수석 가방 속에 있어 얼굴과 코가 창문에 낀 상태로는 오른손이 닿지 않았다.


이번에는 혹시나 운전석 문을 열어보니 열리기는 해도 창문에 낀 얼굴과 함께 몸도 따라가니 왔다리 갔다리 아주 우스운 상황이 연출되었다.


새벽이라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이러다 탈진해서 죽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30분 넘게 실랑이하다 보니 온몸은 땀에 흠뻑 젖었고 판단력은 이미 흐려졌다.


마침내 이러다 죽는 것보다 코뼈가 부러져도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있는 힘껏 머리를 뒤로 확 빼니 코피가 주르륵 흘렀지만 코뼈를 만져보니 이상이 없는 거 같고 살았다는 안도감에 창문 스위치를 내려보니 내려갔다. 아~ 이런...ㅋㅋ


참으로 창피해 누구한테 이야기도 못하고 혼자만 간직하고 있다가 여행계 부부모임에서 이야기했더니 다들 떼굴떼굴 구르며 재밌다고 대박이 났다.


재밌게 이야기를 듣던 멤버 중 한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데 살다 보면 이렇게 실수하는 것이 나뿐만 아니라는 생각에 위안을 삼았다.


이제는 그때만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사람의 뇌도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컴퓨터 회로에 과부하가 걸리면 문제가 생기듯 오작동이나 정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마 전 영화 '시민덕희'에서 은행원을 사칭해 보이스피싱하는 것을 보며 보이스피싱범이 인간의 뇌를 스트레스와 혼란을 유도하여 순간적으로 바보로 만들어 털어가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보이스피싱도 조심하고 스트레스에서 나의 뇌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슬로라이프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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