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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기농 Jul 12. 2020

펜을 들기까지



초등학교 3학년 반장선거에 출마했다. 내 의지는 아니었다. 남에게 추천을 받은 이는 반드시 반장 후보가 된다는 선생님의 규칙 때문이었다. 친하게 지내지 않던 여자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 나를 반장으로 추천한다고 말했다. 내가 여자아이를 모르듯, 여자아이도 나를 모를 텐데 당연히 정해진 차례이듯 내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불렀다. 내 이름을 입 밖에 내면서도 나에게 일절 눈길을 주지 않은 여자아이는 선생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미소 지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직감적으로 나쁜 일이 벌어질 걸 예상했기에 위화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편한 감정은 무시했다. 같은 반 친구에게 생겨난 거북한 마음을 떨쳐내고 싶던 본능인 듯했다. 10분 후 치러질 반장선거에 집중하려 애썼다. 투표 결과는 금세 다가왔다. 반장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친구가 내 표를 포함해 가장 많은 득표수를 얻고 반장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0표를 받았다. 아이들 멋대로 추천한 많은 후보 중 0표를 받은 것은 단 한 명뿐이었다. 우습게도 충격받았다.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원하던 친구가 반장이 되었고, 나는 표를 얻고 싶지 않았지만, 단 한 명도 나를 반장으로 원하지 않는 결과를 맞닥뜨리고 싶진 않았다. 칠판 앞에서 내가 0표를 받았다며 소곤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옆을 지나쳐가는 아이들이 내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어떻게 한 표도 못 받을 수 있나. 나는 학급 모두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나를 추천한 여자아이는 대체 누구를 뽑은 걸까. 나를 왜 추천했지? 이럴 줄 알았다면 나는 나에게 표를 던져 한 표라도 받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부터 내 꿈은 작가였고, 명확히 상기되지 않지만 언젠가부터 내 꿈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꿈이 작가라는 말을 내뱉으면 어른들은 작가가 현실에서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알려주거나, 작가와 비슷하지만 돈벌이가 쉬운 직업을 설명해주거나, 작가가 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수많은 일을 나열했다.

기본적으로 글을 잘 써야 하고, 공부도 잘해야 하고, 넓은 세상에 나가서 견문도 넓혀야 하고, 꾸준히 책도 읽고 쓰고 신문, 출판사, 방송사, 유명 공모전에 글도 넣어야 하고, 유명 대회에도 참가해서 명성도 쌓아야 하며, 써 왔던 글을 친척끼리 돌려가며 피드백도 받아야 하며, 주변 지인들의 이름을 딴 베스트셀러도 출판하여야 한다.     

“이것도 아직 안 했어? 꿈이 잠잘 때 꿈 얘기한 거야? 하하하.”  

   

어른이란 존재는 소싯적에 훌륭한 글들을 꽤 썼지만, 작가를 가상세계의 꿈으로 남겨둔 집단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래의 참담함을 알고 내 꿈을 일찍 접어주려는 선의가 아니면, 꿈을 꿀 수 있는 내가 부러운 것이다. 다음 만남에 과거는 까맣게 잊은 듯 다시 물어본다.  

   

“꿈이 있어? 작가?”    

 

이제는 대답한다.  

 

“아니요. 꿈 없어요.”




남들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 두려웠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들에게 평가당할 때도 빼어나고 싶었고, 꿈 하나를 가져도 남들 앞에서 당당히 꿈을 꿀 수 있는 자격을 얻고 싶었다. 내 의지로 원하지 않을 때도, 내 의지로 원하는 것이 있을 때도 남들의 잣대를 신경 썼다. 두려움은 나를 좀먹고 갉아먹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들의 기대를 해내는 것보다 포기하기가 쉬웠다. 꿈이 없어진 나는 새로운 꿈을 찾아보았다.

  

선생님? 아니야. 평생 공부하고 살기도 싫고,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도 힘들 것 같아. 

요즘 떠오르는 인공지능? 아니야. 나 컴퓨터나 기계는 싹 다 못해. 숫자는 보기도 싫어.

서비스직? 아니야. 사람 응대 잘할 자신 없어.

공무원? 그 높은 경쟁률을 어떻게 뚫지?

회사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업무를 반복하다가는 답답해서 회사를 뛰쳐나올 거야.   

  


마음에 드는 꿈을 찾을 리가 없었다. 남들이 인정하지 못한 꿈이, 이미 품어져 있었다.    

     



내가 펜을 들기까지는 작가로서 출중한 능력을 갖췄다는 인정이 아니라, 못 해도 괜찮다는 인정이 필요했다는 걸 최근 깨달았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남의 글을 읽고, 보았다. 완벽하지 않은 글들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자기 생각을 날 것 그대로 표현하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지.

글을 못 써도 괜찮고, 대회에서 번번이 탈락해도 괜찮고, 전 세계 명작들을 꿰고 있지 않아도 괜찮고, 많은 견문을 쌓지 않아도 괜찮다. 준비 없이도 글이 쓰고 싶다면, 써도 괜찮다. 

    


못 해도 괜찮아.      


    

사람에게는 누구나 인정 욕구가 있다. 초등학교 3학년, 같은 반의 여자아이도 선생님 앞에서 또박또박 발표하는 모습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반장으로 적합하지 않아도 무슨 상관인가. 틀릴 가능성이 있는 수학 문제를 발표하는 것보다는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반장선거에서 나를 추천함으로써, ‘발표를 잘하는 적극적인’ 자신이 인정받고 싶었을 테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 여자아이를 만난다면 “그렇게까지 인정받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반장선거에서 0표를 받고 눈빛이 흔들리는 나에게도 “괜찮다.” 말해 줄 것이다.     



인정받는 일에 실패해도 괜찮다.   

못하는 모습을 사랑하고 인정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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